[독자수필]조순환/지하철의 성추행「진풍경」

  • 입력 1997년 9월 29일 08시 02분


성추행을 하던 남자가 전동차에서 내리더니 급히 반대편 승강장으로 향하기에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경찰관입니다』 하고 신분을 밝히자 대뜸 『왜요, 내가 뭘 만졌다고 그래요. 깜박 역을 지나쳐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한다. 『누가 뭘 물어봤다고 스스로 고백하십니까. 왜 같은 역을 몇번씩 왕복하면서 그러십니까』 하자 『사람이 밀리다보니 손이 그만 실수했다』고 멋쩍어 하며 얼버무린다. 『아저씨 손은 아저씨 마음대로 되지 않는 손입니까』 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를 훈계하고는 『다시 적발되면 댁의 아주머니에게 데려가라고 전화하겠다』며 보냈다. 한가로운 전동차 안에는 눈을 감고 잠시 쉬거나 신문 잡지를 보는 승객들로 평온하기만 하다. 갑자기 옆칸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열리면서 요란한 라디오 소리와 함께 검은 안경을 낀 맹인이 구걸을 하면서 지나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던 맹인과 마주치자 서로 관할다툼을 한다. 이어 전혀 전도사 같지도 않은 사람이 들어와서 목청돋워 설교를 시작하고 잡상인이 지나가며 상품선전을 해대면 평온하던 전동차 안은 금세 승객들의 짜증으로 가득차 버린다. 전동차가 종착역 가까이에 닿자 구걸을 하던 장님은 지팡이를 접어들고는 가파른 계단을 귀신같이 재빨리 올라간다.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지하철 계단에 엎드려 손을 떨어대던 남자는 술값이 떨어지면 다시 그 자리에 와서 엎드리곤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을 짜증스럽게 하는 지하철 풍경이다. 동정이 가는 경범이라도 이를 묵인하다 보면 전동차 안은 무질서의 온상이 되게 마련. 하지만 그런 동정 때문에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보내는 곱지 않은 시민들의 시선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소매치기 현행범을 검거하고 일어설 때 둘러싼 시민들의 박수소리는 우리를 힘나게 한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아기엄마를 불러 자리를 권하던 할아버지가 존경스럽건만 아기엄마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는 눈을 감아버린다. 지하철 그림을 그려볼까. 범죄가 없고 질서가 잡힌 양보가 넘치는 평화로운 지하철 풍경화를 그리고 싶다. 조순환(서울 동작구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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