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0인의 「에이즈 십자군」

  • 입력 1997년 9월 23일 20시 12분


국제에이즈치료의사협회(IAPAC) 소속 의사와 보건관계자 50명이 에이즈 백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스스로 생체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나섰다. 20세기의 천형(天刑)으로 불리는 에이즈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일념에서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린 것이다. 1796년 영국인 의사 제너가 감행한 생체실험이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몰아냈듯이 같은 방법으로 희생양을 자원한 이들의 숭고한 인류애에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에이즈는 세계적으로 하루 8천여명씩 감염될 만큼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가 현재 2천8백만명에서 2000년에는 2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전망이고 보면 에이즈는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치료제와 예방백신 개발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얼마 전 10년 내에 에이즈 백신 개발을 국가목표로 삼겠다고 천명했지만 아직 뚜렷한 전망은 없다. 이번에 IAPAC 관계자들이 몸속에 주입하려고 하는 실험백신은 살아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것으로 원숭이 등 동물실험에서는 성공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으나 반드시 인체실험을 거쳐야만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에이즈 십자군」들은 인체실험을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에이즈의 피해가 천문학적 숫자로 늘어나므로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위험한 실험을 강행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의 모험이 생명의 존엄성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각국에서 동참의사가 이 단체에 쇄도하는 것으로 보아 지지와 성원이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숭고한 실험에 경의를 표하면서 하루 빨리 인류가 에이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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