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80)

  • 입력 1997년 8월 27일 07시 39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6〉 달아나는 길에 마루프는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어젯저녁 튀김장수가 그에게 준 바 있는 목욕비로 빵을 샀다. 빵을 사들고 나오니 때마침 한겨울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찢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비는 좍좍 쏟아지고 있었고 마루프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버렸다. 할 수 없이 그는 낡은 사원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황폐한 사원이었다. 문짝들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벽면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있어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마루프는 추위로 오들오들 몸을 떨다가 퇴락한 승방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이여, 여러분들 중에는 누구 한 사람 이 처량한 남편처럼 아내에게 시달림을 받는 사람이 없기를 나는 알라께 진심으로 기도드리는 바다. 그런데도 만약에 이 불쌍한 남편과 같은 재앙에 빠져 행복을 잊고 사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하여 나는 머지 않은 장래에 못된 아내를 길들이는 방법에 대한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주기 바란다. 그건 그렇고, 그날 그 컴컴한 승방 안에 몸을 숨긴 채 비를 피하고 있던 마루프는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생각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은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 행복하게들 사는데 나는 이 무슨 박복한 팔자람! 그나저나 이제 대체 어디로 가야 그 사악한 여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 주여. 지옥이라도 좋습니다. 마누라가 올 수 없는 먼 나라로만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마루프가 이렇게 탄식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승방 벽면이 갈라지면서 그 틈으로 거대한 마신 하나가 나타났다. 마루프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자 소름이 확 끼쳤다. 그러한 마루프를 굽어보며 마신은 소리쳤다. 『대체 네놈이 뭔데 내 잠을 깨우느냐? 나는 이백 년 동안 여기서 지내왔지만 여태껏 여기 들어와 네놈처럼 나를 훼방놓은 놈은 한 놈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 봐라. 네놈한테 그만한 사연이 있다고 판단되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잠을 방해한 죄로 목을 비틀어 죽일 것이다』 그리하여 마루프는 자신의 아내와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난 마신은 말했다. 『듣고보니 네놈도 어지간히 계집 복이 없는 놈이로구나.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제가 원하는 건 다만 한가지. 지옥이라도 좋으니 마누라와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는 먼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마루프가 이렇게 말하자 마신은 다소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담 좋다. 내 등에 업혀라』 마루프는 마신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마신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쉴새 없이 날아가던 마신은 마침내 어느 높은 산꼭대기에다 마루프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이 불행한 아담의 자식아, 이 산을 내려가면 도성 문이 보일 것이다. 거기 내려가 어떻게든 살아보도록 해라. 네 마누라가 아무리 지독한 여자라 해도 여기까지 찾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난 마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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