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75)

  • 입력 1997년 8월 22일 08시 26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1〉 『자비로우신 임금님이시여, 옛날 카이로에는 헌 신발을 고쳐주고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신발수선공 한 사람이 살았답니다』 샤라자드는 샤리야르 왕에게 이렇게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으니 나는 또 그녀가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나의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는 바다. 들어보시기 바란다. 그 가난한 신발수선공의 이름은 마루프, 이름에 걸맞게 그는 인정 많고 선량한 사나이였다. 자기 자신도 찢어지게 가난하면서 그는 자기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오, 나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움큼씩 금화를 나누어주는 거야. 나는 한푼도 갖지 않아도 좋아. 저 사람들에게 마음껏 나누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착한 사내에게는 그런데 아주 고약한 마누라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파티마였다. 사람들은 흔히 이 여자를 「똥구멍」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젊은 시절부터 이 남자 저 남자와 놀아나면서 온갖 음탕한 짓을 배워버렸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그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아주 음탕하고 상스러운데다가 수치도 체면도 모르는 여자였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남편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하는 것뿐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그녀는 남편을 깔고 앉아 온갖 욕을 해대고 행패를 부렸다. 남편은 그녀의 흉계와 행패가 두려워 힐금힐금 눈치만 살피며 그날그날을 살아배기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데다가 아내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어떻게 해보지도 못했다. 남편은 버는 쪽쪽 마누라에게 갖다바쳤다. 그러나 갖다바칠 돈이 있는 날은 그래도 나았다. 일거리가 없어 벌이가 신통찮은 날이면 마누라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분풀이를 했다. 그런 밤이면 남편은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런 못된 계집을 두고 옛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던 것이다. 그 몇 밤이었던가, 독거미 같은 아내의 거미줄에 걸려 참담하고도 암울한 밤을 지새워야 했던 것이? 아, 이처럼 괴로울 줄 알았다면, 첫날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독을 탄 술을 먹였을 텐데.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일터로 나가려는 마루프에게 마누라가 말했다. 『여보, 오늘 저녁에는 꿀을 바른 튀김국수를 사와요』 『돈만 번다면야 사다주고말고. 지금은 땡전 한푼 없지만 전능하신 알라께서 어떻게든 변통해 주실 거야』 그러자 마누라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신이 당신을 도와주든 말든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야. 어떻게 하든 튀김국수만 사오면 그만이야. 빈손으로 돌아왔단 봐라. 눈뜨고는 차마 못 볼 꼴을 만들어줄 테니. 그 옛날 당신이 내것이 되던 그날 밤처럼 말야』 『오, 인자하신 알라시여!』 남편은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