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화는 피로 물든 산하로 대변된다. 파괴된 건물 교량 등은 흔히 가시적인 피해의 규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하지만 전쟁의 통한은 인간의 찢겨진 심신에서 배어나오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중에서도 팔다리가 잘린 군인 민간인들의 비탄은 죽은 자들보다 오히려 가슴을 아프게 할 때가 적지 않다.
▼지금 韓美(한미)양국은 대인(對人)지뢰의 한반도내 사용금지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군은 한반도에 2000년부터 지뢰를 매설하거나 비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한국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을 고려, 한반도는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논란은 주한(駐韓)미군에 관한 것이지만 미군이 이를 폐기할 경우 그 여파가 곧 한국군에 미칠 것은 분명하다.
▼현재 세계 30여국에는 1억2천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매년 2만5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등에도 다량의 지뢰가 매설돼 해마다 10여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특히 대인지뢰는 값이 싸 곳곳에 묻어놨기 때문에 밖에서 뛰어 노는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비율도 높다. 각국과 인권단체들이 지뢰사용의 전면 금지를 촉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뢰가 방어용 무기로 전쟁억지수단이 되어 있는 곳에까지 무차별 전면 금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북한이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생화학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에서 지뢰의 비인도성 만을 지적하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지뢰사용금지는 남북한의 전반적인 군사력 감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대인지뢰의 사용금지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한반도 예외」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