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지음/문학동네/6,000원>
해산(海山). 「바닷가의 산」 혹은 「깊은 바다 밑에 1㎞ 이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산」. 주인공은 해산이라는 호를 스스로에게 지어붙이며 바다밑에 홀로 떨어져 있는 외로운 산이라는 의미를 택했다. 해산으로 가는 길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으로 향한 길.
바다를 마주하고 들어선 농촌. 거친 물일을 하거나 땅을 일궈야 먹고살 수 있는 그 근육질의 마을에서 달덩이같이 하얀 얼굴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키만 멀쑥할 뿐 씨름판에서도 저보다 몸집 작은 아이에게 져주던 아이, 눈물이 많아 「가시내」라고 놀림당하던 아이. 주인공 한(翰)의 어린시절은 주위사람들의 「별종」 취급이 싫어 복수하는 심정으로 자살을 꿈꾸기까지 했던 외로운 것이었다.
아이는 고향을 떠나 도시사람이 됐다. 유년시절 힘자랑을 하는 머슴애들 사이에서 「책상물림」이라고 그토록 경멸당했던 그가 유명작가가 됐다. 그러나 환갑 나이에 이르러서도 그는 컴컴한 동굴처럼 자신을 가두고 있는 유년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돌아가기로 했다. 자신이 한번도 싸워 이기지 못했던 어두운 기억을 향해…. 고향 가까운 바닷가에 집필실을 짓고 그는 흉터처럼 각인된 어린 시절을 활자로 되살려냈다. 그를 통해 작가는 마침내 자신을 소설가로 키워낸 뿌리, 그 어둠의 힘을 확인한다.
「이기는 것이 빛이라면 져주는 체하는 것은 어둠일 수도 있다. 나는 어둠을 자청했다. 내 어둠은 좌절과 절망인 듯하지만 마치 쑥뿌리와 같아서 자기만의 독특한 빛을 만들어내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