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의 유권자들은 최근 큰 일을 했다. 영국 유권자들은 18년간에 걸친 보수당의 집권을 마감하고 젊고 싱그러운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에게 국정을 맡겼다. 또 프랑스 유권자들은 1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리오넬 조스팽을 압도적으로 지지, 승리를 예상하고 조기총선을 선언했던 자크 시라크대통령의 오만에 망신을 주었다.
43세에 총리가 된 블레어나 대통령에 버금가는 총리역할을 맡은 조스팽에게는 영광이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보는 양국의 변화는 신바람 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오래 집권하는 정당이라도 국민생활에 태만하거나 건방 또는 오만하면 몰아낼 수 있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반대파의 총리를 내세워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발휘될 수 있는 유권자들의 힘이 온전히 드러난 것이다.
양국 국민들이 당당하게 국가의 주인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여러가지로 분석이 가능하다. 그중 대통령이나 총리는 「국민의 대표」일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는 양국 유권자들의 일반적 인식은 연말 대선을 앞둔 우리 국민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을 「엘리제궁의 세입자」 총리를 「마티뇽의 세입자」라고 부른다. 각각 국민들이 빌려준 대통령관저와 총리관저에 임기동안 머무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호칭이 그렇다보니 선거에서 당선된 본인들도, 뽑아준 국민들도 대통령이나 총리를 국민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언제든 심판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에게 「청와대의 주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대권」이라는 권위적 용어도 함부로 쓴다. 요즘에는 정당의 후보도 아닌, 후보경선희망자들을 「용(龍)」으로 부르는 과공(過恭)까지 하고 있다.
방형남<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