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한건주의 수사에 짓밟힌 인권

  • 입력 1997년 5월 29일 19시 56분


은빛 수갑. 어린 시절 TV드라마에서처럼 험상궂은 범인을 붙잡을 때만 쓰이는 걸로 알았던 그 물건이 김모군(19·I대 정외과2년)에게 채워진것은 지난 28일밤11시경. 예식장에서 함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과 함께 회식을 마치고 3호선 압구정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복경찰 2명이 갑자기 등 뒤에서 덮쳤고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진 김군의 양 팔은 곧바로 뒤로 꺾였다. 「철커덕 철커덕」. 수갑이 손목을 옥죄왔다. 변호사 선임권과 불리한 증언 거부권을 알리는 미란다원칙은 TV드라마에나 있는 일이었다. 『왜 이러느냐』며 영문을 물어도 경찰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인근 압구정파출소에 도착한 뒤에야 의문이 풀렸다. 우연히 10대 가출소년을 붙잡은 경찰은 그 소년이 지난 10일 압구정동 H아파트 절도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란 걸 알게됐다. 『밤 10시 압구정역에서 부두목을 만나기로 했다』는 소년의 말을 믿고 경찰은 사복차림으로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소년이 김군을 가리키며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한 건」한 경찰에겐 김군의 항의도 변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을 「피의자1」, 김군을 「피의자2」로 명기한 긴급체포서가 만들어졌다. 소년의 진술을 토대로 「피의자2 등은 범죄사실 틀림없다고 진술하는 바 미란다원칙 고지후 검거한 것임. 형법 제329조에 해당된다고 사료된다」는 내용과 함께. 경찰은 29일 오전 6시경 긴급체포서와 함께 김군을 관할경찰서로 넘겼다. 경찰서에서 재조사를 받은 소년은 『부두목은 오른쪽 손목에 칼자국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진술을 번복, 김군은 체포 12시간만인 오전 11시경에야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김군에게 『어쩔 수 없었다. 참 재수가 없는 것 같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부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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