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PPM 품질관리

  • 입력 1997년 5월 12일 20시 17분


퍼센트 즉 백분율은 1백개 중 몇 개인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척도이기 때문에 불량률도 퍼센트로 관리해왔다. 품질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시절에는 이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 하나의 불량도 기업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품질불량을 경험한 고객 한 사람이 최소한 두세명의 잠재고객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불량제품은 곧 癌나는 기업에 있어서의 불량을 암에다 곧잘 비유한다. 불량제품이 해당 고객을 잃게 하는 데서 그친다면 굳이 암이라고까지 부르지 않아도 되겠지만 어느 회사 제품의 질이 좋지 않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번져나가게 되어 있다. 떡은 사람을 건널수록 줄어들고 말은 건널수록 보태진다는 말 그대로다. 암세포의 분열과 전이를 그대로 닮은 것이 바로 불량제품에 관한 소문이다. 초기에 발견해서 잘라내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그냥 버려두면 사람을 죽게 하는 것까지 똑같다. 이 암도 내버려두면 기업을 죽게 한다. 결국 암적증상의 조기 발견과 퇴치가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게 된다. 비행기는 1백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불량률이 1%라고 가정한다면 무려 1만개 이상의 불량부품을 달고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비행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은 아마 기적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항공산업은 보잉사 등 품질 수준이 극도로 높은 소수의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품질을 관리하는 단위로 당연히 PPM을 사용하고 있다. PPM은 Parts Per Million의 두음자를 딴 것으로 백만분율을 나타낸다. 백분율보다 정밀성이 1만배나 높다. 세균이나 박테리아의 유무를 가릴 때 사용하는 것을 봐도 그 정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통신분야에서 세계 초일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모토롤라는 품질수준의 극대화를 경영이념으로 정하고 「6시그마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6시그마란 통계학 용어로 백만개 중 3,4개 정도의 불량만을 허용하는 고도의 품질수준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 회사가 세계적 품질수준을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양적 경영만 중시하던 시대에는 불량의 개념조차 잘 몰랐던 것이 우리 기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생활의 질이 달라졌고 소비자의 의식이 달라졌다. 더구나 세계와 경쟁하는 국제화 시대다.지금은 質의 시대제품의 질은 더 이상 퍼센트로 관리하기가 불가능해졌다. 퍼센트로 불량을 관리하는 기업은 조만간 말기암 증상으로 쓰러진다. 그런데 말기암 증상은 보험창구나 슈퍼마켓에서도 생길 수 있다. 품질불량이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업에서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량률 제로를 만들겠다는 각오는 제조업 뿐만 아니라 서비스 산업까지 전산업에 걸쳐 일어나야 한다. 우리 기업도 이제는 PPM단위로 품질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 놓을 수 있다. 지금은 질이 대접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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