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고미석/친구가 있습니까

  • 입력 1997년 4월 17일 08시 23분


신문의 날 휴무로 출근을 하지않은 지난 주 수요일. 아이때문에 평소처럼 일어나 등교시키고 나니 다시 자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남들 안노는 때 노는 것이 영 낯설어 시간때우려고 들른 곳이 비디오 대여점. 「첫 손님이 된 아줌마」를 반갑게 맞은 가게주인이 강력히 추천해준 작품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로맨틱물이었다. 딸을 데리고 사는 홀아비 대통령에게 로비스트 애인이 생긴다. 재선 캠페인을 앞둔 그에게는 연애도 치명적 스캔들이 된다. 정적들은 최고통치자의 도덕성과 자질 문제로 비화시키고 인기는 추락한다. 우여곡절끝에 결말은 해피엔딩, 사랑도 얻고 국민의 지지도 되찾는다. 뻔한 얘기라 그런지 러브 스토리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잠시 스치듯 지나간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단둘이 만나 오랜 친구 입장에서 조언을 구하고 충고해주는 대목이 있었다. 맞아, 대통령에게도 친구가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과 함께 문득 우리 대통령에게도 너니 나니 하는 친구가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분신 가신 집사니 하는 상하관계나 이익을 좇는 아첨꾼 빼고, 대등한 관계에서 속도 털어놓고 뼈아픈 얘기를 해주는 참된 친구 말이다. 「머리」는 빌려도 「친구」는 빌릴 수 없을 텐데…. 사실 대통령이 아닌 보통 사람에게도 친구는 인생의 진로를 바꿔놓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어느 책에서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코끝이 찡했다. 진정한 우정을 가늠하기에 꼭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판단 기준은 여러가지겠지만 단 하나라도 그런 친구를 가졌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살아온 나날이 쌓이면서 우리 주변에는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도 늘어난다.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부와 명성을 얻을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단지 내앞에서 늘 웃는 얼굴이라고 다 진정한 친구는 아닐 것이다.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와 깊이를 떠안고 가는 황야같은 세상. 그속에서 내 고뇌를 떠안아 줄 벗이 있으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다가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져본다. 너는 기꺼이 친구의 슬픔을 등에 짊어질 사람인가. 고미석(생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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