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의 눈]「영원한 야구인」 김동엽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34분


97프로야구가 막을 올린 지난 12일 오전. 서울의 동쪽 구석 한 병원 영안실에서는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 야구인의 영결식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같은 날 오후 전국의 4대구장을 열광의 한마당으로 몰아 넣은 힘찬 함성과는 대조적으로 나지막한 흐느낌만 흐른 슬픔의 현장이었다. 야구인 김동엽의 처연한 이승 고별식과 프로야구의 화려한 시즌 개막. 누가 봐도 아이로니컬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순을 이태 앞두고 영원히 눈을 감은 김동엽. 그는 어차피 야구를 삶의 전부로 알고 살았던 치열한 야구인이었다. 한마디로 야구와 인생에 관한 온갖 고정관념을 과감히 털어버린 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고집스럽게 삶을 꾸려온 「기인」이었다. 고 김동엽의 롯데(아마추어)감독 시절. 선수단 전체의 「기」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구보로 훈련캠프를 옮기는 「천리행군」을 감행했다. 그리고 자신도 기꺼이 동참했다. 어느 겨울날. 야구에 정신이 팔려 그날 자신이 살던 단칸셋방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도 모른 채 밤늦게 「옛집」을 찾아 간 그는 어쩔수 없이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지새야 했다. 고된 훈련도중 어쩌다 비가 내리면 훈련을 그만 한다는 생각에 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게 마련. 그러나 「프로감독」 김동엽에게는 비로 인한 훈련중단은 있을 수 없었던 일. 선수들의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독불장군」인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좋았던 반면 그만큼 「적」도 많았던 김동엽은 평생을 살아 오면서 호평보다는 비평이 더 많이 따라 붙었던 야구인이었다. 그러나 친구보다, 가족보다, 그리고 술보다 야구를 더 좋아했던 영원한 야구인 김동엽의 「야구사랑」만큼은 있는 그대로 챙겨주는 것이 야구 후배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일성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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