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박병엽/왜 벤처기업을 하는가

  • 입력 1997년 4월 10일 19시 55분


요즘 가장 각광받는 것중 하나가 벤처기업이 아닌가 싶다. 어딜 가나 벤처기업의 육성과 그에 대한 기대치로 요란할 정도다. 남보다 조금 먼저 벤처기업을 설립한 한 사람으로서 흐뭇한 느낌이 든다.

▼ 각광받는 모험가 정신 ▼

그러나 요즘의 세태가 단시일내에 성공한 기업, 갑자기 떼돈 번 기업인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만을 추켜세운채 성공한 벤처기업이 되기 위해 흘린 땀과 벤처기업인이 해나가야 할 진짜 역할을 집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벤처기업은 상당히 높은 부가가치 창출효과 및 대기업과는 비교되지 않는 고효율의 구조를 갖고 있다. 80년대 블랙먼데이 이후 거대한 불황이 닥쳐왔을때 미국을 살려낸 주역도 대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뭉쳐진 벤처기업들이었다. 이를 볼때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요즘 벤처기업의 육성을 경제난국타개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재 발표되고 주장되는 수많은 벤처기업 육성방안논의가 유행처럼 번졌다 사라져버릴 거품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껏 정보통신부 통상산업부 과학기술처 등은 벤처기업과 관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필자도 정부의 그런 육성정책에 힘입어 기업을 살찌우고 첨단기술개발의 의지를 불태워 왔다. 정부가 지금까지 조용하고 묵묵하게 벤처기업육성에 노력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적이면서 힘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의 벤처기업 붐 속에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버블조짐이 또하나 숨어 있다. 그것은 벤처기업을 설립해 소위 떼돈을 벌었다는 벤처기업인에 대한 인식이다. 각종 매체는 수십억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벤처기업인에 대한 기사를 경쟁적으로 싣고 있다. 또 창업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은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을 우상으로 삼는 현상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필자도 수년만에 수백억원을 벌었다고 회자되는 벤처기업인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수백억원을 쥐었다는 필자는 정작 돈이 없다. 단지 예전보다 생활이 상당히 좋아졌을 뿐이다. 그간 신기술을 개발해 회사를 키웠고 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기관투자가들에게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만들고, 또 그 자금으로 회사성장의 밑거름이 되도록 증자를 해왔다. 즉 돈은 벌었으되 현금은 없고 기업경영에 필요한 주식만 있는 셈이다.

▼ 떼돈 환상은 버려야 ▼

필자는 항간에서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젊은 나이에 동료들과 더불어 혼신의 힘을 바쳐 일으킨 기업의 주식은 현금의 가치로 바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재투자의 노력이 없다면 그 주식의 가치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기업은 나와 나의 동료와 많은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또다른 생명체이며 기업의 이런 성장과 확대재생산을 위한 재투자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떼돈을 벌 목적으로 기업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은 없겠지만 벤처기업인에게 떼돈이란 환상에 가까운 일이다. 벤처기업인에게는 돈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가슴을 압박하는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자긍심 넘치는 기업인의 역할이 있을 뿐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단순히 돈이 아니라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의 기업정신과 신기술 개발을 통한 자기혁신의 모습을 먼저 볼 수 있도록 벤처기업과 벤처기업인을 둘러싼 버블의 조짐을 걷어내고 싶다.

박병엽 <㈜팬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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