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장엽리스트 있나 없나

  • 입력 1997년 3월 29일 20시 15분


「황장엽리스트」가 때아닌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황풍(黃風)이다. 지금 필리핀에 머물고 있는 黃長燁(황장엽)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친북(親北)세력의 명단이 나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엄청난 폭발력으로 현정국을 강타할 수도 있다는 것이 황풍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당장 「황장엽리스트」의 실체부터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리스트가 과연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 불투명하다. 황씨는 북경(北京)의 우리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직후 『그쪽(남한)권력 깊숙한 곳에 이곳(북한)사람이 박혀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고 그 수는 5만명이라고 밝혔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까지 가타부타 확인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가운데 설(說)만 무성한 상태다. 「황풍」의 위기감을 증폭시킨 진원지는 안기부 차장 출신인 신한국당의 鄭亨根(정형근)정세분석위원장이다. 그는 집권당 연수원 연찬회에서 정세보고를 통해 그같은 위기론을 제기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또 있다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그 배경과 경위까지도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만약 근거없이 세간의 설만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는 안개 피우기 전략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황씨 문제는 자칫하면 우리 사회를 대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만일 황씨가 서울 도착후 기자회견이나 언론접촉 등을 통해 누구누구는 「협력자」 운운하는 말 한마디를 불쑥 던졌을 경우 그 충격과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지도 모른다. 황씨 문제는 여야 할 것 없이 아주 신중히 대처해야 할 우리의 안보문제 바로 그 자체다. 더구나 일부 북한문제 전문가들 중에는 아직도 황씨의 망명동기가 과연 무엇인지 석연치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이도 있다. 심지어 위장망명설, 김정일밀사설, 남한정국 흔들기설까지도 없지 않다. 이런 일각의 의구심을 씻기 위해서도 정부는 차제에 황씨의 진짜 망명목적과 동기를 철저히 검증하고 벗길 필요가 있다. 황씨는 망명직후 북경에서 『민족의 문제와 일을 남쪽 사람들과 만나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고 노조와 안기부권한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정부를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는 「황장엽리스트」가 없으면 없는대로 분명히 하고 또 있다면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한보사태와 金賢哲(김현철)씨의 국정개입문제로 궁지에 몰린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이 문제를 국면전환의 뒤집기 카드로 이용하려 하거나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럴 경우 국가적 혼란은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3김씨도 한꺼번에 다 몰락하고 만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