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배금순/『만년계장이면 어때요』

  • 입력 1997년 3월 26일 08시 25분


「만년계장」의 꼬리를 떼야 한다는 게 남편의 입버릇이다. 몇년전부터 해마다 연초가 되면 승진심사를 은근히 기대하곤 했다. 지난 1월 중순. 올들어 유달리 승진을 낙관했다가 안되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이제 후배들이 보기 민망해 내년쯤 명예퇴직을 신청하겠다고 하기에 생계대책이라도 세워놓았느냐고 묻자 묵묵부답인 채 담배만 연거푸 뿜어댔다. 내 딴엔 위로가 될까하고 승진시험 공부나 해 보라고 권하자 『젊었을 때도 하지 않은 공부를 늙어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벌컥 화를 냈다. 남편의 불편한 심기에 자극을 준듯해 순간 겸연쩍었다. 물론 50대에 아들 같은 20,30대들과 시험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분명하다. 하기야 남편이 계장이 될 때 세살이던 큰아들이 금년에 고교1년생이 되었으니 만 15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승진은 정지가 된 상태다. 아들이 성장 과정에서 아빠의 직업과 계급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 왔을 때 얼렁뚱땅 둘러대곤 했다. 그러나 이젠 사회를 알만큼 성장했으니 과거처럼 둘러댈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솔직하게 『아빠는 승진보다는 건강이 더 소중하다』고 전제하고 『아빠가 못한 승진을 네가 대신해야 하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주문한다. 『여보, 나는 당신이 만년계장이라도 만족하니 너무 승진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 편하고 건강하게만 지냈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그이의 마음이 진정되면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다. 배금순(인천 부평구 산곡동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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