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야기/나를위해 산다]박사과정 강희옥 주부

  • 입력 1997년 3월 16일 09시 44분


[윤경은 기자] 20대는 자유롭게 살았다. 5년간의 스튜어디스 생활. 마음껏 하늘을 날았다. 그때 너무 너른 세상을 봐버린건가. 강희옥씨(38). 모스크바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에 이름이 올라있다. 서울에선 포기하는 것 투성이였던 전업주부의 삶. 아침에 바삐 나서는 직장여성들이 무조건 부러웠었다. 정신에 지방질이 끼는 것 같은 기분….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영어 일어 러시아어에 차례차례 손을 댔다. 일주일 동안 책 한 장을 못 넘기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유학을 결심했다. 험하고 혹독한 곳을 택해야만 차라리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생활 8년째인 91년 오래 꿈꾸어오던 「반란」을 감행했다. 남편과 일곱살배기 딸을 남겨두고 달려간 곳은 모스크바. 그곳의 위태함과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새 하늘을 보았다. 젊은 학생들 틈에서 몸살을 앓아가며 공부했다. 통역과 한국어강의로 바득바득 학비를 벌었다. 마피아에게서 산 권총은 늘 주머니에 꽂혀 있었고. 2년만에 석사학위를 따고 요즘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틈틈이 국제행사에서 러시아어와 일어 통역을 한다. 신문기사를 하나하나 옮겨적으며 4년동안 매달렸던 「러시아 현대시사용어사전」 세 권도 다음달쯤 출판된다. 『가정을 내동댕이친 건 아니예요. 남편에게 매여만 살다 이젠 각자 자기세계를 가진 동반자 관계가 된 거죠』 늘 얼굴맞대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줄었지만 후회는 없다. 성큼성큼 혼자 걸어가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나 붙잡는 새장 속의 여자가 더이상 아니니까. 『모스크바에서 보낸 30대…. 처절했죠. 처절했던 만큼 아름다웠고…. 난 말이죠, 강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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