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백돌이자 슈베르트 탄생 2백돌이 되는 해다.
서울의 한 신문사와 한 라디오 방송은 슈베르트 2백돌을 기념하는 음악회 음악방송을 올해 연중사업으로 기획 추진해오고 있다. 그에 반해서 세종대왕 6백돌을 기념하는 언론사의 어떤 기획도 아직 눈에 띄는게 없다. 한국역사 중흥의 대업을 이룩한 위인은 깡그리 무시하고 음악사에서도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남의 나라 작곡가를 기념하는데엔 정과 성을 쏟고 있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선 금년 들어서야 세종대왕 6백돌 기념사업을 한답시고 뒷북을 치고 있는데 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선 이미 작년부터 음악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나같은 외국인에게까지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을 홍보하는 1백쪽짜리 컬러판 화보책자를 보내주는 등 기념사업을 장기적 체계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 21세기는 「바다의 世紀」 ▼
한국역사에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가장 큰 일을 한 두 분을 고르라면 세종대왕과 함께 李忠武公(이충무공)을 드는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참 기이한 우연의 일치는 민족의 중흥과 수호에 가장 큰 위업을 남긴 두 분이 다같이 53세를 일기로 작고했다는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천수를 다했다고 하겠으나 충무공은 노량해전에서 왜군에 대한 최후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독전 중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적군에도 아군에도 당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맏아들의 방패로 유혈이 낭자한 몸을 가리며….
내년은 그 충무공의 4백주기가 되는 해다.
영국의 수도 런던의 한복판에는 트라팔가르해전에서 나폴레옹과 싸워 영국 해군의 우위를 시위하며 전사한 넬슨제독을 기념하는 「트라팔가르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높이 56m의 구름을 찌르는 돌기둥의 가물가물한 꼭대기 위에 넬슨 동상을 모셔두고 있다. 세계 해전사의 권위 발라드제독은 이 넬슨제독과 충무공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놓았다.
「영국인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고 전투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충무공은 명장 이상으로 「거의 완전무결한 인물」(千寬宇)이었다. 그는 「명장보다도 성자(聖者)」(鄭寅普·정인보)였다. 해전의 성자, 바다의 성웅(聖雄).
21세기는 「바다의 세기」라 내다보고 있다. 정부도 마침내 해양부를 신설했다. 한국의 정치는 아직도 바닷가 출신의 양 김(김)씨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세의 애국자요, 세계적인 바다의 성웅 충무공의 4백주기를 준비하는 어떤 기획도 아직 눈에 띄는 게 없다.
▼ 아쉬운 「충무공 정신」 ▼
일제 치하에서도 동아일보는 역사소설 「이순신」을 연재했었다. 일제 치하에서도 동아일보는 타락한 아산의 현충사를 중건하기 위해 전국민의 성금을 모으는데 앞장섰다.
「한보」 「안보」 정국으로 뒤숭숭한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충무공의 「리더십」이요, 바로 「충무공의 정신」이다. 정치권이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요즈음인지라 동아일보와 같은 민간기구가 충무공의 6백주기 사업을 뜻있게 기념하는데 앞장서주기를 긴급 동의한다.
최정호(연세대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