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10)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100〉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다섯번째 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바깥 문을 거쳐 얼마 동안을 걸어 들어가자 이윽고 굉장한 대저택이 나타났습니다.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고 주위에는 벽포를 둘러치고 건물 한가운데는 이 세상 같지 않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습니다. 형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잠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형의 눈에 띈 것은 정원 저편에 앉아 있는 당당한 풍채에 보기 좋은 턱수염을 기른 남자였습니다. 첫눈에 보아도 아주 지체가 높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도 형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형은, 형편이 어려워서 그러니 무엇이든 좀 베풀어달라고 말했습니다. 형이 이렇게 말하자 그 높은 어른은 갑자기 수심에 잠긴 얼굴이 되더니 아름다운 옷을 짝짝 찢으며 소리쳤습니다. 「오, 이 어찌된 일인가? 내가 이 도성에 있는데 당신은 배를 굶주리다니? 이런 부당한 일은 참을 수가 없어!」 그리고는 음식을 대접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런 높은 분이 형 같이 하잘것없는 사람의 불행을 가슴 아프게 여긴다는 것에 형은 마음 속으로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그때 주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이제 내 집에 묵으며 나와 소금을 함께 나누기로 합시다. 돈독한 우정을 나눕시다」 이 말이 너무나 황공스러워 형은 말했습니다. 「나리마님, 저는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답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랍니다」 그러자 주인은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사환! 손 씻을 대야와 물통을 가져오너라. 지금 곧 이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해야겠다」 사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난 주인은 다시 형에게 말했습니다. 「자, 손님. 이리 오셔서 손을 씻읍시다」 형은 일어나 손을 씻으려고 했습니다만 대야도 물통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누로 손을 씻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하던 형은 이윽고 주인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물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누로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다 씻자 주인은 다시 하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식탁을 차려오도록 하라!」 그리고 잠시 후 주인은 형에게 말했습니다. 「자, 어서 드시지요. 사양하지 마시고」 그러나 여전히 형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마치 음식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리저리 손을 놀리면서 음식을 먹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왜 그러시오?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드시오」 그래서 형도 주인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음식을 먹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인은 계속해서 지껄였습니다. 「많이 드시오. 이 빵의 맛과 흰 빛깔은 기막히지 않습니까? 잘 보시오」 그러나 형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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