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08)

  • 입력 1997년 2월 23일 20시 08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98〉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다섯번째 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여자를 살려주기로 마음 먹은 형은 물었습니다. 「너 같은 여자가 어째서 그런 흉측한 검둥이와 한패가 되었느냐?」 그러자 여자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본래 어떤 상인의 노예였습니다. 가끔 그 노파가 찾아와 친절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파가 말하기를 노파가 사는 마을 어디에 세상에서도 다시 없을 성대한 혼인잔치가 있는데 저한테 구경가고 싶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파를 따라 나섰는데 노파는 저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는 검둥이에게 붙잡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저주받을 노파에게 속아 삼년 동안을 이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랍니다」 듣고 있던 형은 물었습니다. 「이 집에는 그 검둥이 놈이 사람들을 죽이고 노획한 물건들이 많이 있겠구나」 「보물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갖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져 가세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형을 창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과연 창고에는 돈자루가 든 궤짝들이 무수히 쌓여 있었습니다. 형이 놀란 눈으로 그 궤짝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여자가 말했습니다. 「이걸 모두 옮기려면 힘센 사내들을 데리고 와야 될 거예요. 자,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오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형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형이 남자 열 사람을 데리고 돌아와 보니 문은 활짝 열어젖혀져 있고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던 돈 궤짝들도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잔돈 얼마와 살림살이 도구들이 전부였습니다. 형은 여자에게 속아 넘어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형은 창고를 모두 열어젖히고 남아 있는 돈과 살림살이 도구들을 모두 형의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형의 집 문간에 스무명 가량의 관리들이 들이닥치며 말했습니다. 「총독께서 부르신다」 이렇게 말한 관리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형을 붙잡아 밧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리들은 어제 형이 옮겨다 놓은 돈과 물건들도 모두 실어 총독에게로 옮겨갔습니다. 「너는 이 돈과 물건들이 어디서 났는지 대답하라!」 총독은 형을 굽어보며 다그쳤습니다. 형은 그래서 그 노파와의 일을 모두 털어놓고, 그 여자가 달아난 것까지 죄다 이야기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이 돈과 물건들을 모두 총독님께 바치겠습니다」 형의 이야기를 듣고난 총독은 말했습니다. 「좋다. 그래도 알다시피 나는 선량한 총독이다」 이렇게 말하며 총독은 죄인의 죄를 사해 준다는 뜻으로 주는 자비의 손수건을 형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총독이 형을 살려주었던 것은 그가 선량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과 물건이 탐이 났기 때문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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