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42)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독립군 김운하 〈13〉 『군대에서요. 사고로 죽은 졸병에게 애인이 있었는데, 후에도 그 여자가 자주 면회를 왔습니다』 『어떡해…그럼…』 그녀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많이 사랑했었는가 봐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면회를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면회를 오면 늘 누군가 대신 위병소로 나가 돌려보내고 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대 두 달쯤 남겨 놓고요』 그 말을 할 때 독립군은 그녀 얼굴에 두었던 시선을 그녀 손쪽으로 옮겼다. 『그래서요?』 『이제 부대에 그가 없으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말만 전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차마 그 말만 하고 돌아설 수가 없어 서툰 위로의 말 몇마디를 했습니다. 그냥 돌려보내기엔 왠지 안타깝게 보이고 해서… 그러니까 여자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울더군요. 위로의 말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울었겠지요. 그건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랬을 겁니다. 서울서 세 시간 반 떨어진 곳을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 그리며 찾아온 길인데 돌아서면 돌아서는 대로 다시 가야할 길도 아득했을 테고… 여자가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를 부대에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면소재지까지 데려다 줄 수 없겠느냐고요』 『그래서 데려다 준 거군요?』 『변명이 아니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의 일도 그랬고… 위병소에서 부대로 전화를 해 여자를 데려다 주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지요. 토요일 오후였는데, 전화를 받은 장교도 형편을 아니까 저녁 때까지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시작하고 나니까 이상하네요.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괜찮아요, 전… 어떤 얘기도』 『그럼 마저 이야기하죠. 돌아갈 차표까지 끊고 난 다음 읍내 다방에서 함께 차를 마셨는데, 여자가 그랬어요. 이렇게 돌아가고 나면 자기는 이제 그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에 또 찾아오게 된다고. 그러면서 함께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저녁 아홉시 점호 전까지 돌아가야 되는데, 생각만 그럴 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럼 몇시 돼서 돌아왔나요?』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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