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보의혹 官界도 가려야

  • 입력 1997년 2월 10일 20시 08분


한보부도사건이 터진 지 20일이 가까운데도 행정부의 책임이나 관계(官界)와의 유착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 해명이나 검찰조사가 없다. 한보사건의 진원지(震源地)는 누가 봐도 행정권을 집행하는 정부다. 그 때문에 검찰은 권력층의 외압 및 기업과 정치권의 야합관계를 가리는 일 못지않게 정부의 정책결정과정과 여신관리에 얽힌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한보그룹과 정부와의 관계에서 첫번째 의혹은 한번 투자를 잘못하면 장기간에 걸쳐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는 철강산업에 과잉투자를 허용한 부분이다. 그것도 자기자금이 부족하며 기업의 성장과정이 불투명하고 수서사건 등으로 잡음이 많은 한보그룹에 정부는 당진제철소를 짓게 하고 2단계 확장까지 쉽게 허용하는 한편 막대한 금융대출을 추천했다. 현대그룹의 철강산업진출을 끝내 허용하지 않은 것과 비교할 때 이 부분이 석연치 않다. 둘째, 지난 94년 한보철강에 코렉스공법의 기술도입을 승인한 과정은 한보의혹의 핵심이다. 철강산업에서 노(爐)는 사업의 경제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설비다. 그 노와 관련된 신기술은 기술의 효율성 안정성 상업성 등에 대해 국제기관의 평가를 받은 뒤에 도입을 승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한보철강 2기확장을 위한 코렉스기술은 과장전결로 도입을 승인했기 때문에 몰랐다는 것이 당시 주무장관의 해명이다. 말도 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셋째, 한보철강의 당초 투자예상액은 2조7천억원이었다. 그러나 2기설비가 착공될 즈음 투자액이 5조7천억원으로 배 이상 불어났다. 관계당국은 마땅히 투자액 증가의 원인, 투자의 적정성, 자금조달계획, 장래의 수익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금융자금 추천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검토가 있었는지조차 불투명하고 대출금에 대한 관리도 방만했다. 그같은 모든 과정의 무리를 묵인한 것이 외압과 로비때문인지, 정부가 무능해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직무유기였는지, 그 원인과 책임소재를 정부 스스로 먼저 가려야 하며 검찰이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 기업이 자기돈으로 신규사업을 벌일 때 정부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장부지매립, 기술도입승인, 외화사용과 은행융자추천과정 등에서 정부는 기업의 무모한 투자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삼성의 자동차산업 참여를 허용하고 반대로 현대의 철강산업 진출을 막을 때 이같은 규제수단을 이용했다.그런 점에서 한보그룹의 철강산업 진출에는 승인단계에서부터 의혹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배후에 권력층의 외압과 로비 또는 검은돈의 거래를 통한 정치나 관료와의 유착관계가 없었는지 검찰은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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