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김정수 기자] 운전경력 3년째인 여사원 김효진씨(26·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요즘도 핸들을 잡기가 멈칫거려진다.
잠원동집에서 신촌직장까지 오가면서 부닥치는 일부 남성운전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
신호대기를 할때마다 겪어야 하는 옆차선 남성운전자의 야릇한 웃음과 손가락질, 그리고 뒤이은 갑작스런 끼어들기….
김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다툴 수도 없고…. 아예 차를 팔아치울까 하는 생각도 몇차례나 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 일산신도시에서 서울로 출톼근하는 정호정씨(29)는 요즘도 여성운전자라고 욕을 하거나 새치기를 일삼는 남성운전자와 하루 한두명은 꼭 마주친다.
『아직도 「여자가 무슨…」이란 말이 앞서는 게 현실이에요. 「집에가서 밥이나 해라」 「남편 잘 만나서 차를 끌고 다니냐」 「댁의 남편은 쉬고 있나 보지」 등 자존심을 건드리는 소리도 서슴지 않죠. 이것만이 아니예요. 여성들의 끼어들기는 유죄고 남성들의 끼어들기는 무죄인지 어쩌다 차로변경을 할라치면 뒤에서 연신 경적을 울려대고 깜박이를 켜대기 일쑤예요』
여성 오너드라이버들이 늘면서 이제는 어디에서나 차를 모는 여성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 여성운전자를 대하는 곱지않은 시각이 남아있다.
지난해 7월16일 오후 경기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편도 1차로. 가족을 태우고 엑센트 승용차를 몰던 여성초보운전자 김모씨(34)는 위협운전을 하며 뒤따라오던 김모씨(50·건설현장 근로자)에게 갓길을 따라 6백여m를 내몰리다 결국 도로변 20m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김씨를 포함해 타고있던 5명이 모두 2∼6주의 부상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초보운전을 하던 김씨가 서툴게 좌회전을 하다 「감히」 앞길을 막았다는 것. 김씨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상대가 그같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여성운전자가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백화점지하주차장이나 귀가길에 강도를 당한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던 한 여성운전자는 생매장을 당하기까지 했다.
여성들의 면허취득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운전면허를 취득한 여성은 지난 90년 1백만명에서 93년 2백31만명으로 2배이상 늘었고 95년에는 3백68만여명이었다.
최근 6년간 연평균 28.8%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급격하게 증가, 같은 기간의 남성들의 연평균 증가율인 11.1%를 훨씬 상회했다.
전체 운전면허소지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90년 12.2%에서 95년 22.5%로 크게 증가했다.
여성운전자에 대한 남성운전자의 난폭운전으로 당황한 나머지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 운전경력 5년의 주부 이명숙씨(26·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급차로 변경 등 난폭운전으로 사고를 유발해 놓고도 먼저 큰소리를 치며 험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안심시킨 뒤 나중에 뒤집어 씌운 경우도 당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과 교통센터에 근무하는 李在連(이재연·26)의경은 남성들의 난폭운전으로 인한 피해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한다.
옆차로를 진행중인 운전자가 여성임을 알곤 일부러 깜박이를 켜지않은 채 끼어들기를 한다든지 앞서 가면서 갑자기 급정거를 해 뒤에 따라오던 여성운전자를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도로교통안전협회 교통교육연구실 李在恒(이재항·36)교수는 남성들도 이제는 여성 오너드라이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교수는 『운전면허 소지자들이 늘면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여성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이 서로 섞여 차를 모는 시대가 됐다』며 『여러 사람이 차를 운전하는 만큼 남들도 자기방식대로 운전해야 한다는 독불장군식 운전습관이나 여성운전자에 대해 갖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