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파동에 이어 한보의혹에 이르기까지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야당의 대응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국가적 위기인 최근 사태는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의 잘못과 책임이 크지만 야당도 제 역할을 다하며 지혜롭게 사태를 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갈등을 증폭시켜 반사적 정치이익을 얻어내려는 길로 가고 있다.
우선 국회 소집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특별검사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모든 것을 국회에서 논의, 해결책을 찾으라는 국민여론은 외면한 채 야당은 특검제가 안되면 국회소집도, 국정조사권 발동도 못한다고 주장한다. 당초 金大中(김대중) 金鍾泌(김종필) 두 야당총재는 한보의혹을 풀려면 즉각 국회를 소집해 국조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제 얘기는 없었다. 그러나 여당이 이를 수용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특검제를 고리로 걸었다. 이 때문에 오늘부터 국회를 열기로 한 여야의 잠정합의가 깨졌고 지금은 국회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
검찰수사를 믿지 못하므로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미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관련자를 소환, 구속하고 있는 마당에 특검제를 고집하는 것은 시기에도 맞지 않고 비현실적이다. 당장 국조권을 발동해 조사에 착수해도 진상을 파헤치기에 촉박한데 지금부터 특검제 도입을 위한 법을 새로 만들어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자는 것은 무리다.
야당들은 이미 국회에 관계법안을 제출했으므로 여당의 의지만 있다면 특검제 도입이 어려운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보사건처럼 큰 의혹을 다루려면 한두명의 특별검사로 될 일이 아니고 현 검찰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 특검제가 도입된다해도 여야가 특별검사단의 인선결과를 두고 또 격돌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여야가 사사건건 싸움만 한다면 진상조사는 마냥 늦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권한이 막강하고 검찰의 중립성이 의심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은 특별검사가 수사하는 제도를 언젠가는 도입하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이 그럴 때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은 여야 정치권 모두가 한보비리 연루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 국정조사는 지연시키면서 여당이 듣지 않는 특검제만 고집하니 딴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야당이 특검제 집착을 버리면 여당도 국조특위의 여야 동수(同數)구성이나 시한문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특위의 경우 지난해 여야 동수로 구성한 전례가 있다. 청문회도 국회법이 보장하고 있으므로 못열 이유가 없다. 청문회의 TV생중계 여부는 방송사가 결정할 문제다.
한보 수사는 검찰에 맡기고 그 결과가 허술하다든지 국정조사가 벽에 부닥칠 때 특검제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무엇보다 지금은 빨리 국회부터 열어 진상조사에 나설 때다. 김대중총재는 어제도 부산에서 특검제 등 국회소집의 전제조건만 고집했다. 야당의 두 김총재가 계속 이러면 대선(大選)의 유불리(有不利)만 생각하고 국민과 나라의 장래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