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과학]나무의 겨울나기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5분


자동차 광고에서 영하 40도의 맹추위에 떨고 있는 애처로운 남극 바다사자의 맑은 눈을 볼 수 있다. 동물이 추위를 견디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영하의 온도에서 그래도 동물은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겨울나기가 약간은 수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자리에 선채로 꼼짝할 수 없는 나무들은 어떻게 추운 날씨를 견디어 낼까. 겨울에 대기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다년생 풀들은 땅위의 부분은 죽고 땅속에 뿌리만을 남겨 둔다. 눈이나 흙에 덮인 뿌리는 차가운 공기로부터 얼지 않게끔 보호를 받는다. 갑자기 기후가 변해 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빙점 아래로 내려가면 농작물은 큰 피해를 본다. 이때는 식물조직의 세포안에 얼음이 얼고 세포막에 손상이 일어나 조직이 파괴되므로 식물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온대 지방의 수목은 가을이 오면서 서서히 내려가는 온도 때문에 저온에 적응(저온순화)하게 된다. 저온순화가 된 수목은 결빙 온도가 되면 식물 조직은 세포와 세포사이에 공간이 있어 이 세포간극에 먼저 얼음결정이 만들어진다. 이곳이 얼 때 세포안의 수분은 밖으로 빠져 나와 세포 밖에서 얼음결정을 만든다. 이 얼음 결정은 세포보다 크기가 수백 내지 수천배나 된다. 이것이 오히려 나무에게는 단열재(斷熱材)로 작용하여 세포를 얼어죽지 않게 막아준다. 이와 동시에 세포내 물질, 특히 당류의 농도가 높아져 결빙 온도가 낮아지게 된다. 또한 이때 세포내의 수분함량이 매우 낮아진다. 이런 수분 부족을 이겨내야 식물은 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내한성 식물은 세포 속에 있는 아주 적은 양의 물로 살아가야하는, 극심한 탈수 상태에 견디어내도록 순화된 것이다. 추위를 견딘 내한성 식물은 봄이 되어 세포간극의 얼음이 녹으면 물이 세포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온대지방의 낙엽수와 과수는 대부분 영하 40도에서도 냉해를 입지 않는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가로수는 이같은 탈수 상태를 견디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홍 영 남<서울대교수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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