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명동성당 최고참 경비원 오회근씨

  • 입력 1997년 1월 24일 20시 14분


[李寅澈기자]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지 매일 시위 농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장기농성한 단체만 13개단체에 이르렀고 한달평균 20여건의 시위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시위없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지…』 명동성당 최고참 경비원 오회근씨(61)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근 한달간 농성을 벌여온 민주노총 지도부가 철수한 24일. 오씨는 그래도 우선 한시름을 던 것 같은 표정이다. 이곳 경비원중 최고참인 오씨가 명동성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0년 성당입구의 가톨릭사회복지회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부터. 명동성당 본당 경비원으로 자리를 옮긴 87년부터는 역사의 심장부에서 「6.10민주항쟁」에서 최근 노동법 파업사태까지 수많은 시국사건들을 지켜봤다. 『6.10항쟁 때는 명동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에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까지 대거 가세하는 것을 보고 권력이 민심을 거역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실감했습니다. 이 항쟁은 한마디로 민의(民意)의 승리가 아닐까요』 호헌철폐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한 87년 대항쟁이후 명동성당은 「피난처」의 대명사가 됐다. 오씨는 성당입구에 써붙인 각종 대자보를 읽거나 학생 근로자 등과 대화를 나누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성당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비원으로서는 남모를 애로도 있다. 귀가가 늦거나 아예 못들어가는 날이 잦고 최루가스 때문에 기관지가 좋지않아 고통스럽다. 경찰에 쫓긴 시위대가 성전구내에서 장기간 농성하면서 청소를 하지 않거나 기물을 부술 때엔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시위문화도 많이 달라져 농성을 풀고 떠날 때는 모두 미안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단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오씨의 영세명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그가 「시국 경비원」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해내는 것은 신앙심의 힘이라고 한다. 오씨는 『네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대로 오죽하면 이곳까지 왔을까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며 『젊은이들과 생각이 다를 때도 있지만 단식으로 쓰러지는 자식 또래의 학생을 볼 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생수나 라면을 넣어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명동성당이 시위 농성 없는 말 그대로의 「성역」이 되는 그날이 오기를 오씨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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