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기수가 탈옥하다니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4분


강도치사죄로 교도소에 수감중인 무기수가 탈옥, 잠적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쇼생크 탈출」이나 「에스케이프」같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번 탈옥사건은 교도행정의 허점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재소자 관리만 철저해도 교도소에서의 죄수 탈출은 불가능하다. 탈옥에서 잠적까지의 과정을 따져보면 재소자 관리는 물론 경비체계, 사건 대처능력 등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탈주범은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쇠톱으로 잘라낸 뒤 감방을 탈출, 교도소 담벼락과 사동(舍棟)사이의 교회신축 공사장 밑부분 땅을 30㎝가량 파헤치고 빠져나온 다음 미리 준비한 나일론 밧줄을 이용해 교도소 외벽을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도소 탈출극치고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탈출에 성공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의문과 문제점이 드러난다. 사건 당일은 물론 평소 재소자의 인원 점검과 감방의 이상여부 확인은 제대로 해왔느냐는 물음에서부터 죄수가 어떻게 흉기나 다름없는 쇠톱과 담을 넘을 밧줄을 구입해 소지하고 있을 수 있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탈옥사건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느냐는 의문도 남는다. 동료수감자나 교도대원들의 방조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탈옥사실이 파악된 후 교도소측의 대처에도 문제가 있었다. 즉보(卽報)사항을 사건발생 다섯시간이 지나서야 상부에 보고하고 경찰에 탈주범 검거 협조요청을 했다는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엄연한 직무유기다. 초동대처만 제대로 했어도 사건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탈옥범은 강도살인을 한 흉악범이다. 전과기록만도 네건이나 된다. 이같은 흉악범이 탈옥한 만큼 또다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탈옥범은 수감생활중 제보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해 왔다는 점에서 제2의 범행전에 반드시 검거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도행정에 대한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한다. 감시와 교화체계뿐만 아니라 교도행정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기강이 해이해진 탓이다. 어떤 조직보다 엄정한 복무자세가 요구되는 군과 경찰 교도소같은 조직체계의 기강마저 흐트러진다면 국가사회의 안녕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경제가 어렵고 정국이 뒤숭숭할 때일수록 국가기관의 기강확립은 절실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