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통일포럼]北「고립주의」경계 韓-美공조 중요

  • 입력 1997년 1월 20일 20시 13분


<<1997년 새해들어 한반도 문제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직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는 제임스 레이니 대사와 金瓊元(김경원)전 주미대사를 초청, 이를 검토하고 전망해보는 동아일보 통일 포럼을 가졌다. 전략적 사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값진 내용이 많았으나 지면 관계상 그 요점만 간추려 소개한다.>> ▼ 참 석 자 ▼ 제임스 레이니<주한미대사> 金 瓊 元<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장> 사회:鄭 鍾 文<동아일보 통일연구소장> 정소장〓동아일보를 위해 귀한 시간내주신 두분 대사께 감사드립니다. 레이니대사의 이한을 앞두고 연 이번 통일포럼은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합니다. 먼저 레이니대사께서 말씀해 주실까요. 작년 북한은 잠수함 침투에 대해 사과했고 신년들어서는 경수로를 지원받는 내용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정서에 서명했으며 4자회담에 관한 한미 공동 설명회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양의 움직임을 그들의 적대 구조가 바뀐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까. 레이니대사〓이러한 움직임을 구조상의 변화나 북한의 태도변화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스스로 처한 심각한 상황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경제나 식량 원조를 받기 위해선 그 길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정권이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개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과도 하고 4자회담 설명회 참석에 동의한 것입니다. ▼“南―北 적대구도 안변해”▼ 김전대사〓북한은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에 사과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자립과 자족 등 「주체」사상을 강조해온 그들로서는 틀림없이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과로 남북한 사이의 적대관계 구도가 변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북한과의 협상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소장〓4자회담 공동설명회에서 미국과 한국중 어느 나라가 주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또 4자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미국은 4―2원칙을 계속 고수할 겁니까. 레이니대사〓미국의 우선 관심사는 남북 양측을 회담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남북한이 단독으로 만나기가 워낙 어려우니 환경 조성을 위해 미국과 중국이 함께 만나는 형식을 띠도록 하되 미국과 중국의 역할은 남북이 주가 되도록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누가 어느 단계에서 뭘 먼저 말하느냐의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모여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김전대사〓4자회담의 형식과 관련된 숫자의 의미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문제는 한국인 손으로 다뤄야한다는 당사자 해결 원칙만 지켜지면 됩니다. 정소장〓만약 북한이 4자회담의 의제에 주한미군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레이니대사〓만약 4자회담이 개최된다면 「아무 조건없이」 만나는 것입니다. 우선 회담장소로 나와 각자의 관심 문제 희망사항 등을 논의하자는 것이지요. 이 회담의 부분적인 목적은 북한이 요구해온 평화조약과 그들의 군사정전위원회 무력화 시도에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모든 참석자가 동의한다면 이 4자회담은 평화회담 또는 심지어 평화조약의 과정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비무장지대(DMZ)내 병력의 후방 배치를 가능케해 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그 결과의 일부가 되리라고 봅니다. 저는 또한 각종 논의의 주체는 남북이라는 김전대사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끝으로 정소장의 질문이 혹시 미국이 북한의 꾐에 넘어가 성급히 미군철수를 단행하지 않을까 하는 한국민의 우려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저는 그런일은 결코 없을 것이니 염려마시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한 또는 한국이 『이제 더이상 미군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 한 미군의 감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이곳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는 북한과 거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전대사〓근본적으로 미군은 미―북간이 아닌 한미간 협정에 의거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바꾸라 말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4자회담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들은 긴장완화와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조치들입니다. 정소장〓한국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렛대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레이니대사〓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역할로 인해 무엇을 잃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얻느냐의 시각에서 봐야합니다. 중국은 북한을 납득시키는 강한 설득력과 합의사항 이행을 보증하는 등 중요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관련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데 중국의 지지는 필수적입니다. 정소장〓북한은 두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봅니다. 북한은 잠수함 침투로 사과한 후에도 자국민과 한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북한이 앞으로는 한국에 대해 성실한 자세로 나올까요. 김전대사〓일전 제 외국친구는 남북한이 서로에게 「정직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제가 볼 때 중요한 것은 정직성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성과 합리성입니다. 이 점을 우리 대북정책의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레이니대사〓성실성 문제는 상호신뢰와 관련돼 있습니다. 대화는 뿌리깊은 불신의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선전정권이기 때문에 그들의 선전에 귀기울이지 말고 그들이 약속한 바를 실천에 옮기는지 잘 지켜봐야 합니다. 제네바 합의도 신뢰에 기반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이 자신의 몫을 이행하지 않는 한 우리몫도 해주지 않는 식으로 이행의 단계마다 검증을 거치도록 돼 있죠. 바로 이런 방식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울러 남북한 모두 감정적인 수사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전대사께서 지적하신대로 합리적인 방법으로 차근차근 접근해야겠지요. 그 길밖엔 없습니다. 정소장〓전통적으로 미국외교정책은 민주주의 증진에 기초를 두어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은 미국이 북한에 지나치게 관대하게 보이는 한편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활발히 노력해왔습니다. 미국은 어느 선까지 관대해야 할까요. 레이니대사〓분명히 말해 미국은 한국의 국익이기도 한 한반도 긴장해소 외에는 북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경제적 관심도 없으며 북한과의 동맹관계가 어떤 이득이 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오직 한반도의 긴장해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94년 봄 미국은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파치 헬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대포(對砲)레이더 등의 장비를 들여왔는데 당시 우린 관대하다고 비난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힘을 방패로 삼아 북한과 자신있게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북한을 상대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한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할 뿐입니다. 김전대사〓신문을 읽는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관대」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인권에 대해 크게 문제삼고 있습니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외신과 인터뷰만 해도 백악관과 국무부가 논평을 하고 의회도 가만히 있지 않으며 신문엔 사설까지 실립니다. 반면 더 열악한 북한의 인권상황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의아해 하지요. ▼“美 우선과제는 한국안전”▼ 레이니대사〓북한은 독재정권이라 인권문제 같은 건 아직 제기조차 못합니다. 미국의 제일 과제는 4천5백만 한국민의 안전입니다. 수용소에 수감된 몇명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나라 전체가 인권문제인 셈입니다. 그런 정권에 인권 이야기란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북한과 접촉하는 목적은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북한이 만나게 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도덕적으로 승인해줄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접촉은 해야하는 것입니다. 냉전이 한창일 때 소련과 상대한 것이 스탈린을 승인해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택동 공산정권 초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심지어 적국까지 상대할 수 있는 것이죠.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대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소장〓한미간의 대북한 시각과 접근에 가끔 이견이 노출됐습니다. 전략적인 면에서는 공통의 목적이 있으나 전술적 차원에선 불협화음이 들립니다. 양국간의 간격을 좁힐 방안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레이니대사〓그 차이점을 통감해왔지요. 3년동안이나 그 틈새에서 지냈으니까요. 잠수함 사건을 다루면서, 특히 지난해 12월의 마지막 3주동안 서울과 워싱턴 정부는 새로운 차원의 대화와 협의를 해왔는데 이 과정은 매우 더디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장기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김전대사〓개인적으로 한미간의 국익에 대한 정의와 접근 방법상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간격을 「건강한 틈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국익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 및 전략에 있어 차이는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아야 하고 차이점을 완전히 제거하려 한다거나 또는 차이점으로 인해 반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레이니대사〓물론 양국간 이해관계가 완전 일치할 수야 없지만 그러한 불신이 서서히 양국 동맹의 바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바로 이 점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한미간의 동맹과 같이 중요한 관계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화약고 지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간의 협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소장〓워싱턴은 북한을 다루는데 있어 「억제를 넘어서」 또는 개입이라는 새 외교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개입정책이 얼마나 잘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레이니대사〓「억제를 넘어서」는 제가 한 말이므로 제가 옹호해야겠죠. 「억제를 넘어서」는 억제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안전, 경제적 발전, 민주주의가 북한의 재난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억제 이상의 다른 보호방법에도 눈을 돌려 보자는 것이죠. 심각한 상황에 처한 북한은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한미 양국에 이익이 되는 방법으로 북한을 개입시키고자 합니다. 정소장〓저는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교훈 하나를 힘들게 얻었다고 봅니다. 소위 「저강도 분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우쳐주었습니다. 게릴라 침투와 비정규전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북한에 대한 경고로 한미 양국이 대규모 저강도 분쟁을 전쟁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김전대사〓저강도 분쟁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러한 도발에 대한 대량보복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행위수준에 맞춘 보복이지요. 저는 대규모 보복보다는 필요한 경우 적절한 수위로 대처하는 현재의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시간은 한국편” 알아야▼ 레이니대사〓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억제」가 제대로 먹혀들어 43년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재앙이 방지됐습니다. 시간이 한국 편이라는 사실로 볼 때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정소장〓97년은 한국 문제의 향방에 대단히 중요한 한해가 될 것입니다. 한미 양국의 강한 유대관계가 어느때 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두분 대사께서 양국의 협력증진을 위한 조언을 해주십시오. 김전대사〓한미 양국민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냉전이 끝난 마당에 세계에 신경쓸 게 아니라 국내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유혹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같은 경향은 고립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에도 무역과 노동 등의 문제로 이런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양국민이 현실감각을 갖고 긴밀하게 협력해 21세기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레이니대사〓저 역시 미국이 국익을 계산하여 아시아에서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문에서 발을 빼기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 혹은 세계문제에 너무 관여한다는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신고립주의의 유혹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미국에서 신고립주의가 득세하리라고는 보지않지만 그런 경향은 항상 잠재돼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간의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소장〓장시간에 걸친 토론에 감사드립니다. 〈정리〓趙雲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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