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19)

  • 입력 1997년 1월 20일 20시 13분


짧은 봄에 온 남자〈1〉 그해 봄은 짧았다. 그녀 마음 속의 봄 또한 그랬다. 단순한 느낌으로가 아니라 실제로도 늦게까지 눈이 내렸다. 단지 그것이 쌓이지 않고 가는 눈발로 공중에 날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눈발이 흩날리는 봄에 아저씨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봄이 가기전, 아저씨가 모든 사람의 곁을 떠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저씨의 얼굴을 처음 본 건 삼학년 새 학기가 막 시작되고 나서였다.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저씨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신문사에서 온 연락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저씨는 편지를 하지 않았고, 이제 그녀가 편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사에서 어느 사회단체의 후원으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일반 교양 도서에 대한 독후감을 공모했다.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아저씨를 볼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은 신문사 제일 꼭대기 층의 강당에서 있었다. 어느날보다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그곳으로 나갔다. 그러나 강당에 들어선 다음엔 이내 아저씨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상이라는 건 늘 특별한 몇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며칠 전 수상자 명단이 실린 신문을 볼 때 대상과 자신이 받을 금상까지만 보고 그 아래 이름들은 미처 살피지 못했다. 아저씨는 내 이름을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고, 틀림없이 시상식장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사람의 행사 진행 요원이 있었지만, 어느 사람도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보기만 하면 아저씨의 얼굴을 알 것 같았다. 아저씨의 얼굴엔 「지리멸렬」의 어떤 우수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저마다 행사 현수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수상자 단체 사진만 찍곤 쓸쓸한 마음으로 복도 끝으로 나왔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왠지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 손에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뽑아든 채 그녀는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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