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63)

  • 입력 1997년 1월 6일 20시 12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53〉 『혹시 당신이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가요?』 저희들 중 하나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보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 운명을 바꾸어놓은 저 뻔뻔스러운 얼굴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제서야 이발사의 얼굴에는 동요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무말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일동은 젊은이를 향해 물었습니다. 『제발 그 곡절을 들려주십시오』 그러자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제가 오해를 살 테니까요』 이렇게 되자 이발사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 되었고, 젊은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나는 바그다드 태생입니다. 부친은 바그다드에서도 이름난 상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내 나이 스물도 되기 전에 알라의 부름을 받고 유일한 자식인 나를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다행히 부친께서는 평생을 모은 많은 재물을 나에게 남겨놓으셨습니다. 그 재산 중에는 내시를 비롯하여 하인이며 노예들도 많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친께서 남기신 재물 덕분에 나는 호의호식하며 안락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여자라고 하면 어머니까지 싫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셨으니, 우리 집에는 여자라고는 시중을 드는 몇몇 하녀들과 노파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내 나이 스물이 되던 해 어느날이었습니다. 바그다드 거리를 혼자 걷고 있으려니까 저만치 앞에 한 무리의 여자들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른 몸을 피하여 어느 뒷골목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목은 공교롭게도 막다른 골목이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골목 안에 있는 돌걸상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여자들이 지나갈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까 맞은편 집 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젊은 처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베일도 쓰지 않고 짧고 가벼운 실내복 차림을 한 채 발코니로 나오더니 발코니에 심어둔 화초에 물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자를 피하려고 도망쳐왔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여자를 만나다니, 처음에 나는 몹시 낭패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 발코니로 나온 그 여자로 말할 것 같으면 아름답기가 보름달 같았던 것입니다. 영롱한 눈빛,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 불룩한 젖가슴, 잘록한 허리, 둥근 엉덩이와 날씬한 다리, 어느 것 하나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도 섬세하고 우아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여자라는 동물이 저렇게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정말이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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