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56)

  • 입력 1996년 12월 29일 20시 56분


사랑의 경지〈3〉 남편으로서 상현은 결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결점이 많지 않은 남편이란 없다. 남편이 되는 순간 여자는 그에게서 수많은 결점을 발견한다. 자기 아내가 되는 순간 남자가 여자에게서 수많은 결점을 보게 되듯이, 그것은 결혼을 함으로써 역할 분담을 하게 된 동업자들 사이의 이기심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상현이 남편으로서 결점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때는 내 방식으로만 상현에게 성실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스스로의 느낌이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지, 남의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는 것이 아니다. 이제나 저제나 내 행복을 꺼내줄까 싶어서 남의 주머니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내는 시간 속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 한숨짓고, 얻은 다음에는 믿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결국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스스로 피폐해지는 과민한 사랑. 나는 그런 의존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소모가 아니다. 생산이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일이다. 나도 그 녹색 식물처럼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갈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현이다. 현석의 말이 맞았다. 나는 상현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내 안에서 사랑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면 상대가 굳이 운명적 대상일 필요는 없다. 인간이란 절대 제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대신 적응할 수는 있지 않은가. 나는 맥주 두 병을 더 주문한다. 『혹시 드립터스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좀 틀어줄 수 있어요?』 내가 부탁하자 종업원은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조금 있다 내 자리로 다가와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곡이 없는데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나는 내 혀가 건성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이 받침을 깊이 누르지 않고 굴러가는 것을 느낀다. 맥주가 맛있다. <글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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