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국축구 「왕자병」서 벗어나라

  • 입력 1996년 12월 17일 20시 00분


▼한국의 골네트는 후반전 45분간 평균 9분에 한번꼴로 흔들렸다. 전반전의 선전(善戰)에 고무돼 TV앞에 바짝 다가앉았던 국민들의 마음 역시 9분에 한번꼴로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똑같은 속도로 한국 축구의 자존심도 추락했다. 2002년 월드컵 개최국이란 자부심, 아시아엔 적수가 없다는 식의 오만, 월드컵 3회연속 출전 기록을 뽐내던 콧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16일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한국이 이란에 2대6으로 진 것은 변명할 나위없는 완패(完敗)였다. 기술과 체력이 떨어졌고 조직력도 없었으며 지도력조차 창피한 수준이었다. 좋은 경기는 승패에 앞서 최선을 다해 싸웠느냐 여부로 판가름난다지만 그점에서도 한국팀은 할 말이 없게 됐다. 선수들은 후반에 거의 뛰지 않았다. 막판엔 상대팀의 플레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코치진은 시합이 끝난 후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 등 변명만 늘어 놓았다 ▼언제나 이길 수 없고 매번 잘할 수도 없는 것이 스포츠다. 경기의 세계에 절대강자란 없으며 바로 그점이 스포츠관람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도 경기자가 최선을 다해 뛸 때에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조(組)예선 탈락위기를 남의 힘으로 넘겨 겨우 8강에 오른 한국팀은 이번 경기 후반에서 최선을 다하긴 커녕 무기력증만 보였다. 제 실력을 드러낸 채 맥없이 허물어진 꼴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스포츠에선 투혼(鬪魂)이 사라졌다. 국민 모두가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경기인들 역시 헝그리 정신은 간 곳 없고 땀으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노력도 외면하고 있다. 축구시합에서 한번 졌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무력해졌는지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번 참패를 거울삼아 월드컵 등 다가오는 큰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각오라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축구인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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