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8)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0시 51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2〉 나는 투서의 내용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 사생활이라면 누구보다 내가 다 안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삼을 것인지 아닌지는 학교쪽에서 결정할일이므로 내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박지영의 생각은 나와 다르다. 『「베스트 우먼」이라는 잡지에 강선생 기사 난 적 있었잖아요. 투서에 그게 첨부되어 있대요. 그러길래 그때 내가 가만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언론위원회에 제소하거나 명예훼손 같은 거 걸었더라면 선수를 칠 수 있는 건데』 후배 은숙이 썼던 그 기사의 제목이 생각난다. …독신 여교수의 이색주장 「동성애는 필수, 윤락은 선택」 은숙의 입에 발린 「미안해요」소리도 스쳐간다. …선배, 미안해요. 페이지가 늘어나는 바람에 선배가 다른 잡지에 기고했던 동성애 글까지 이어붙이게 됐어요. 그걸 인용하자니 필자 이름을 안 밝힐 수도 없고…. 그때 종태도 그 기사를 보았다며 「무슨 배짱으로 실명까지 냈느냐」고 나무랐었다.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박지영의 코끝으로 코털 하나가 급하게 들락날락하며 그녀의 걱정과 불안을 대변해 준다. 『투서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인가봐요.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기는 미안하지만, 유부남하고의 관계도 있고 이혼 사유도 뭐 여자 쪽의 부정 때문이라는 둥. 그리고 강선생 혹시 모교에 있는 교수 누구하고 가까운 사이에요? 그런 것까지 다 있더라는데요』 투서 속에 현석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자 내 마음의 평정은 깨지고 만다. 이쯤되면 나도 담배 한 대쯤 피워물지 않을 수 없다. 누가 현석하고의 관계까지 알고 있을까? 종태는 그가 다니는 시사주간지의 스티커가 붙은 차를 몰고 강의실로도 두어 번 찾아온 적이 있으므로 어쩌면 노출이 될 수도 있다. 행동은 느리고 게으른 데 비해 눈치만은 빠른 박지영만 해도 종태의 존재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현석은 다르다. 교수사회가 넓다고만은 할 수 없고 또 소문도 많은 곳이라 어느 정도 주의를 해왔던 것이다. 얼핏 문창과의 김교수가 떠오른다. 그가 중매쟁이를 자처하면서 내게 소개해주겠다고 하는 상대가 현석과 같은 과에 있다. 내 주변에 현석과 끈이 닿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뿐이다. 그러나 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젓는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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