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미국잔치」로 끝난 APEC

  • 입력 1996년 11월 27일 20시 07분


미국이 지난 94년 말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시 유럽연합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 아태경제협력체(APEC)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사실은 제법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미국이 APEC를 앞세워 유럽이란 단일공동체에 대항하겠다는 위협이 먹혀들었다는 얘기다. 필리핀 APEC회의의 예고된 핵심의제는 18개 회원국들의 「행동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그동안 선진국들 사이에만 논의했던 정보기술협정(ITA)채택 촉구선언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면서 사실상 주의제가 변경됐다. ITA는 2000년까지 컴퓨터하드웨어 통신장비 반도체 등 미래 정보산업을 좌우하는 2백여개 정보기술제품의 관세를 철폐하자는 것으로, 반도체 등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경쟁력이 취약한 한국으로서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협정. 물론 이 부문에서 미국의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다. APEC 회원국들은 무성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상선언문에 「신축성」이란 문구를 삽입하는 선에서 ITA 지지쪽으로 돌아섰다. 이 지지선언은 다음달 9일 개최되는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담에서 미국이 ITA체결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확실한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상회의가 종료된 직후 외신들은 마닐라회의가 「미국의 승리」로 기록됐다고 타전했다. 물론 정부의 주장처럼 ITA가 장기적으로 우리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회원국간 교역확대를 통해 국부(國富)를 높인다는 주장도 일견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취약한 우리의 정보기술분야가 개방과 경쟁의 높은 파고에 맞서 제대로 준비를 갖추기엔 2000년은 너무 가까운 느낌이다. 朴 來 正(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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