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22)

  • 입력 1996년 11월 24일 01시 43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12〉 오른손이 없는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나에게서 사들였던 천을 꺼내어 그녀에게 보이며 말했습니다. 「여기 최고급 물건이 있습니다. 값은 천이백디르함입니다」 오, 나는 그때 그 순금 실로 짠 천을 매만져보고 있는 그녀의 섬섬옥수를 넋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좋아요. 이걸 사겠어요. 대금은 나중에 사람을 시켜 보내드릴게요」 상인이 내놓은 천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던 여자가 말했습니다. 곁에서 듣고만 있던 나는 그 아름다운 카이로의 젊은 처녀가 바그다드로부터 내가 가져온 나의 물건을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때 상인이 말했습니다. 「아씨, 그건 안됩니다. 대금을 지금 당장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물건의 주인이 지금 여기 계시고, 우리는 이익금을 나누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자 여자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알고보니 당신은 아주 야속한 사람이로군요! 그동안 내가 이 가게에서 값비싼 천을 얼마나 많이 팔아주었는가 하는 건 까맣게 잊어버렸나요? 내 덕에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 하는 것도 잊어버렸나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경우라서 꼭 맞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천을 들어 상인의 무릎에 내동댕이치면서 말했습니다. 「괘씸한 사람! 사람을 깔보다니!」 그리고는 홱 돌아섰습니다. 그 순간 내 영혼도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빠져나가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아가씨, 제발 돌아와 주십시오」 그러자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내쪽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그녀가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다급한마음에상인을향해물었습니다. 「이 천을 나한테 얼마에 사들였지요?」 「일천일백디르함이었소」 「그럼 종이 한 장을 주구료. 영수증을 써드릴게요. 당신의 이익금 일백디르함을 제외한 이 천에 대한 당신의 지불이 끝났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나는 가게 주인에게 영수증을 써주고 여자에게 천을 내주며 말했습니다. 「자, 가지고 가세요, 아가씨. 알라께 맹세코, 이 천은 당신같은 분께 어울릴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다음 장날 저한테 대금을 갖다주십시오. 그렇지 않고, 저의 선물로 받아주신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여자는 감동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알라의 은혜가 당신한테 있기를」 이렇게 말하고 난 그녀는 잠시 후 혼자말처럼 덧붙였습니다. 「당신이 제 남편이 되어 제 물건을 마음대로 쓰실 수 있다면…」 오! 여자의 소원이 알라의 뜻과 맞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나는 눈앞에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만 같은 환상을 느끼며 말했답니다. 「아가씨,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저의 다른 물건도 드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의 소원이 있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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