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동네병원이 사라진다]휴폐업의 실태

  • 입력 1996년 11월 15일 20시 30분


「金世媛기자」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개업, 비뇨기과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許모씨(61)는 25년간 운영하던 비뇨기과의원을 93년 10월 폐업하고 그 다음해 12월 서울 동대문구 용답동 네거리에 주유소를 차렸다. 59년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경찰병원에서 근무하다 68년 현재의 자리에 개원한 그가 30여년 동안 걸어온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주유소주인으로 변신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낮은 의료보험수가로는 늘어나는 적자를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었고 의사가 자율적으로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도록 옥죄는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이발비도 1만원인데 근육주사비가 주사기값을 포함해 하루 3백원, 초진료가 2천8백원입니다. 의사가 이발사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실정이다보니 90년대 들어서는 병원이 내 건물인데도 병리기사에게 주는 월급 1백70만원보다도 적은 돈이 남더군요. 93년부터는 아예 한달에 2백만∼3백만원씩 적자가 이어졌구요』 서울 영등포에서 2대째 M소아과병원을 운영해온 의사 李모씨는 2년전 병원문을 닫고 목동 5거리에 불고기집을 개업했다. 5, 6년전부터 병원경영이 힘들어 고용한 의사들을 내보냈는데도 적자가 쌓여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서울 신촌에서 정형외과를 운영하던 安모씨는 경영난이 심화되자 병원건물을 개조해 1층은 주유소로 만들고 병원은 2층 한귀퉁이로 옮겨 간판만 내걸었다. 아예 전업을 하고 싶지만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단골 환자들과 사회적 체면때문에 「병원원장」이란 직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외면과 의료보험 저수가 체계속에 적자 경영으로 허덕이다가 문을 닫거나 폐업 또는 전업하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통증클리닉」 「대장항문클리닉」 「유방암클리닉」 등 전문화를 표방한 의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한햇동안 전국에서 휴폐업하거나 운영이 안돼 지방이나 변두리로 이전한 의원(치과와 한의원은 제외)은 1천1백98개소로 전체의 9.3%에 이른다. 이 중 휴진이나 이전을 제외한 순수 폐업의원은 9백97개로 94년의 8백16개보다 22.1%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중 신규 개업한 의원은 1천2백71개소에서 1천3백42개소로 5.6% 늘어나는데 그쳤다. 94년도의 휴폐업이전율은 8.7%로 이웃 일본의 휴폐업이전율 1.8%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올들어서는 6개월동안에 94년 1년동안 폐업한 의원 수와 비슷한 8백56개 의원이 벌써 문을 닫았다. 서울시 송파구의 경우 89년만해도 연평균 3%였던 휴진 폐업률이 95년 9월에는 13%로 급증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개원의협의회가 94년과 95년 서울 부산 광주지역에서 휴폐업신고를 한 4백명의 개원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동네의원이 사라져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휴폐업한 개원의들의 월평균 의료보험 진료비 청구액 규모는 2백50만∼5백만원(41.8%)이 가장 많아 월평균 의원운영경비 4백만∼6백만원(40%)보다도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휴폐업의 원인으로(복수응답 허용) △주변 병원과의 경쟁으로 인한 내원환자 감소(60%)△불합리한의료수가(53.9%)를 지적했다. 30병상 미만인 의원급 병원뿐만 아니라 30∼3백 병상 규모의 중소병원 역시 도산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전국에서 6개 종합병원과 17개 병원(한방과 치과병원 제외)이 폐업하거나 운영난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자기 건물을 갖고 있던 병원장들은 건물 전체를 노래방이나 당구장 단란주점 등에 세주고 임대업주로 변신할 수 있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서울시 의사회장까지 지낸 서울 구로구 의료법인 D병원 金모원장(60)은 경영압박에 견디다 못해 지난해부터 20년간 운영해온 자신의 병원을 내놓았으나 마땅한 인수자가 없어 파산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털어놓는다. 『한마디로 정책과 제도가 3차 의료기관만 살아남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종별 가산율이라고 해서 대형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진료비와 처치비의 경우 의보수가의 30%, 교통사고환자의 경우는 100%까지 더 받을 수 있는 반면 일반 병원은 각각 15%, 20%밖에 더 못 받습니다. 그뿐입니까. 대형병원은 입원환자 식대와 병실요금이 신고제로 돼있어 부르는게 값인데 비해 일반 병원은 의보조합의 간섭이 심합니다』 중소병원의 도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체 병원수는 6백93개로 94년보다 43개소가 늘어났고 병상수도 1만여개가 늘어났다. 이는 한편에서는 대형병원과 대학병원 분원이 잇따라 설립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병원이 잇따라 무너지는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재벌병원의 등장으로 불기 시작한 의료기관의 대형화 고급화 바람이 중소병원의 도산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대형병원들이 복강경 레이저시술기 등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 첨단고가장비를 경쟁적으로 설치하다보니 환자가 대형병원으로만 몰릴 뿐 아니라 같은 맹장수술을 하더라도 수술비가 일반 병원과 10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요즘은 병원근무가 3D업종이라 인건비가 오른데다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워 인건비가 진료수입의 50∼6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劉泰銓중소병원협의회 회장(영등포병원이사장·57)은 『이화여대목동병원과 여의도성모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의 등장으로 최근 몇년 사이 영등포일대 12개 중소병원중 9개 병원이 문을 닫았거나 병원을 내놓았으며 강남지역에서는 현대중앙병원과 삼성의료원의 개원으로 십여개의 중소병원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고 말한다. 「큰 병원은 좋은 병원」이라는 환자들의 인식에도 문제는 있다. 부산의 종합병원장이기도 한 鄭義和의원(신한국당)은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가 의료발전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중소병의원의 도산이 의사와 병의원 근무자들만의 불행이 아니라는데 있다. 동네 병원을 외면했던 주민들에게 대형병원의 환자집중에 따른 불편과 의료비 상승, 의료서비스의 부실로 되돌아온다. 감기 배탈같은 간단한 증세에도 대형병원을 찾아야 하고 질병의 원인을 초기단계에서 찾아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응급상황 발생시 병원 접근이 어려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3분 진료를 위해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한 대기실, 시장바닥보다 더 소란한 응급실, 내용도 모른채 진행되는 수술과 처치, 입원하기 위해 뒷돈을 써야 하는 잘못된 관행, 부르는게 값인 병실료와 식대 등 대형병원에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소병원의 도산을 적자생존에 따른 자연도태로만 여긴다면 지역주민의 건강을 지켜주는 중소병원은 이제 영영 동네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팀장:金次雄사회1부장 ▼金世媛·李炳奇·孔鍾植·曺源杓기자〈사회1부〉 ▼金徹翰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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