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14)

  • 입력 1996년 11월 14일 20시 29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4〉 요리장이 사라진 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나자레인 거간꾼 하나가 나타났다. 그 사내는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다. 취중에도 그는 아침 기도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 생각에 목욕탕으로 가던 참이었다. 갈지자 걸음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꼽추 가까이에 이르러 바닥에 쭈그려 앉더니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에 기대고 선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교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저녁에 누구에겐가 두건을 날치기당한 바 있었는데,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꼽추를 보자, 이놈이야말로 두건 도둑놈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꼽추의 목덜미를 후려갈겨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시장지기를 부르는가 하면 꼽추의 멱살을 움켜잡고 때리고 목을 조르고 하였다. 나자레인이 꼽추 위에 걸터앉아 마구 때리고 있을 때 시장지기가 달려오며 물었다. 『그 사람이 어쨌길래 그러오?』 그러자 나자레인 거간꾼이 말했다. 『이놈이 내 두건을 채어가려고 했단 말이오』 『그만하면 됐으니 자, 이제 비키시오』 그제서야 나자레인은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자레인에게 구타를 당한 꼽추가 죽어 있질 않겠는가. 그걸 보자 시장지기는 소리쳤다. 『큰일났다!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죽였다』 그리고는 거간꾼에게 달려들어 뒷결박 지우더니 총독한테로 끌고 갔다. 시장지기에게 끌려가면서 나자레인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오, 메시아여! 마리아여! 어쩌다가 내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단 한 방을 때렸을 뿐인데 뒈지다니, 재수없게도 나는 어지간히 성미 급한 놈을 건드렸어!』 그러는 사이에 술도 깨었으므로 그는 이제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여 눈물을 흘렸다. 거간꾼과 꼽추의 시체는 그날 밤 총독의 저택에 갇힌 채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침이 되자 총독이 나왔다. 총독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나자레인 거간꾼이 살인범이 틀림없다고 판단되니 그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하고, 집행관에게는 판결문을 낭독하도록 분부했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꼽추를 죽인 것은 사실이라고 믿었던 나자레인도 총독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동은 교수대를 세우고 나자레인을 끌어냈다. 형리는 나자레인의 목에다 밧줄을 걸고 당장에라도 달아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구경꾼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잠깐만! 그 사람을 죽이면 알라께서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거든요. 꼽추를 죽인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입니다』 이렇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온 것은 바로 요리장이었다.일이 이렇게되자 형리는 형집행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고, 총독은 요리장을 향하여 물었다. 『꼽추를 죽인 것이 그대라고? 그대는 대체 왜 죽였는가?』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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