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뭐니뭐니해도 우리 남편이 최고」

  • 입력 1996년 11월 12일 20시 05분


「金順德기자」만원버스에서도 뾰족구두를 신고 살아남은 여성들이 직장에서는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닌다.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곳 여자들은 집에서 운동화를 신고 나와 회사에서는 하이힐로 갈아신는다는데 우리는 거꾸로인 셈이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재킷과 구두벗기인 남자들도 꽤 있다. 편한 신으로 바뀌신는 것이야 집안에서는 아예 신발을 벗고 사는 우리의 좌식문화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끼리는 편하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는 의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길에서는 모르는 남자가 뾰족구두와 예쁜 다리를 보고 혹시나 따라올지도 모르지만, 직장에서야 다 아는 남자들인데 굳이 「내숭의 미학」를 발휘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집에서는 더하다. 쉬는 날 예고없이 남의 집을 찾는 사람은 현관밖에서 한참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내복 반바지 트레이닝복 등 저마다 편한 옷을 입고 있던 가족들이 현관 벨소리와 함께 후닥닥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여는 것은 가장 빨리 옷을 갈아입는 사람 몫이다. 집에 있을 때는 세수만 겨우 한 얼굴로 머리에는 까치집을 짓고 있던 아내가 외출할 때면 뽀얗게 화장을 하는 모습에 『저 여편네가 남편말고 잘 보여야 할 남자를 집밖에 뒀단 말인가』하고 분개했다는 사람도 봤다. 그러나 따져보면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도, 상처를 받는 것도 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다. 성장을 한 차림으로 외국 유명단체의 내한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겠지만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는 따뜻한 시간처럼 고품질의 행복도 없다. 예쁜 그릇 사모으는 것이 취미인 주부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새 그릇은 어쩌다 한번 오는 손님을 위해 장식장에 모셔놓고 식구들끼리는 깨져도 아깝지 않은 그릇만 쓰곤 했는데 하루는 하도 사는 게 쓸쓸하다 싶어 좋은 그릇을 꺼내 식탁을 차렸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손님오는 날이야?』하고 의아해 하면서도 밥풀하나 흘리지 않고 의젓하게 먹더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바로 내 곁에 있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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