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03)

  • 입력 1996년 11월 3일 20시 35분


제5화 철없는 사랑〈42〉 이렇게 시작한 누르 알 딘은 아니스 알 쟈리스와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것으로부터 고국을 떠나 바그다드의 이 정원에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교주가 물었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시려오?』 그러자 젊은이는 대답했다. 『알라의 세계는 넓습니다. 어디든 갈 데가 있겠지요』 교주는 젊은이의 신세가 처량해 보였던지 측은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모하메드 빈 스라이만 알 자이니 왕 앞으로 편지를 한장 써 드릴테니 그걸 가지고 가시오. 그 편지를 읽으면 무슨 일로든 왕은 당신을 꾸짖지 못할 거요』 그러자 누르 알 딘이 말했다. 『뭐라고요! 대체 임금님한테 편지를 쓰는 어부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당신의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만, 내가 임금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데는 다 까닭이 있소. 나와 바소라의 임금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내가 반장이었소. 그때 이후로 그 사람은 운이 좋아 왕이 되고, 나는 알라의 뜻으로 보시는 바와 같이 일개 어부의 신세가 되고 말았소. 하지만 내 부탁이라면 무엇이고 반드시 들어주고 날마다 천 가지 청을 해도 거절하지는 못할 거요』 이 말을 들은 누르 알 딘은 말했다. 『아하! 그거 참 잘 됐군요. 그러면 편지를 좀 써주시오』 교주는 먹통과 갈대붓을 잡고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자비하시고 인자하신 알라의 이름으로 그대 앞으로 한 마디 쓰노라. 이 서한은 알 마디의 아들 알 라시드로부터 모하메드 빈 스라이만 알 자이니, 즉 나의 임명을 받고 내 영토의 일부에서 부왕이 된 자에게 보낸다. 이 서한을 가지고 가는 자는 대신 화즈르 빈 하칸의 아들 누르 알 딘 아리라는 자로서, 이 서면을 받는 즉시 그대는 왕위에서 물러나 이 젊은이에게 왕위를 계승하라. 나의 명령을 어기지 말지어다. 총총』 교주가 이 편지를 누르 알 딘에게 내어주자 젊은이는 거기에 입맞춘 뒤 두건 속에다 넣었다. 그리고 떠났다. 누르 알 딘이 떠나자 이브라힘 노인은 교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나쁜놈의 어부 같으니라고, 동전 스무 닢 값 밖에 안되는 고기 두 마리를 갖고 와서 금화 세 닢이나 받았으면 됐지, 정말 이 색시까지 데려갈 작정인가? 이 예쁜 내외를 정말 갈라놓을 것인가?』 노인은 그때까지도 교주를 어부 카림으로 알고 있었고, 하찮은 어부 따위가 두 아름다운 젊은 내외를 갈라놓았다는 것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이 이렇게 욕설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쟈아파르가 뛰어들어왔다. 이보다 앞서 쟈아파르는 검사 마스루르를 왕궁으로 보내어 임금의 옷을 한 벌 가져오게 했던 터였다. 교주는 곧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마스루르가 가져온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브라힘 노인은 어부가 교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끝만 물어뜯으면서 신음하듯 말했다. 『대체 나는 자고 있는 것일까, 깨어 있는 것일까?』 <글 :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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