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감도둑과 어머니의 눈물

  • 입력 1996년 11월 3일 20시 29분


올해 쉰셋 되신 어머니는 그래도 동네에서는 젊은층에 속하는 편이라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으신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40㎏ 밤가마니를 이고 한 걸음에 산을 내려오시곤 했는데 작년엔 반가마니 정도를 겨우 이시더니 올핸 그것조차도 못이시겠다며 『이젠 나도 늙었나 보다』하신다. 어머니를 더욱 힘없게 한 것은 어제 낮에 있었던 감도둑사건 때문이다. 앞산의 밤 주우랴 논두렁에서 톡톡 튀는 콩 꺾어다 타작하랴 벼베랴…. 여자 혼자 몸으로 가을걷이 하느라 마을 앞 텃밭에 단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보고도 딸 짬을 못내셨다. 콩타작을 하며 어찌나 탐스럽고 색이 곱던지 하나만 따먹었으면 하시면서도 손을 못대고 하나 둘 셋… 뿌듯한 마음에 세어보기만 하셨단다. 내일쯤 시간을 내 따야겠다고 생각하시면서…. 어제 오후 건너편 논에서 벼를 묶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텃밭을 보니 빨갛던 감나무가 휑하니 비어있어 이상하다 싶어 한걸음에 달려와 보니 손이 닿지 않는 꼭대기에 몇개만 달려있고 그 예쁘고 탐스럽던 감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더란다. 순간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툭툭 털고 그냥 들어오셨다고 한다. 저녁상에서 없어진 감 얘기를 하시는 어머니 눈에는 눈물까지 고였다. 어떤이가 어릴적 향수를 못이겨 한 두개 따간 정도가 아니고 가마니를 들고와 서너접이 넘는 감을 몽땅 따가버린 것이다. 몇해전 마을 앞에 매어놓은 흑염소 두마리를 누군가가 몰아간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아까운 마음을 감추며 『그저 누가 됐든간에 잘 먹으시오』 하셨는데 이번엔 『내것이 그리도 탐나든가』하며 원망하셨다. 자신의 노력없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소중한 것들을 움켜담은 검은 손들을 상상해본다. 늙은 농부가 밭에 흘린 콩 한알도 귀히 여겨 주워담는 갈퀴같은 손을 생각하면 어찌 함부로 손을 댈 수 있겠는가. 최 숙 희(전남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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