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194)

  • 입력 1996년 10월 24일 20시 16분


제5화 철없는 사랑 〈33〉 한바탕 웃고 난 뒤에서야 다시 잔을 돌리기 사작했다. 이렇게 마시고 떠들고 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밤도 깊어만 갔다. 그때 아니스 알 쟈리스가 말했다. 『이브라힘 영감님, 죄송하지만 촛불을 하나 켜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켜시오. 그러나 꼭 하나만 켜야 합니다』 여자는 발딱 일어나더니 우선 초 한 자루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알 수 없는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여든 개의 초에다 차례차례 불을 붙여나갔다. 그걸 보자 이번에는 누르 알 딘이 말했다. 『이브라힘 노인장, 어때요, 램프를 하나 켜면 안될까요?』 『아, 이번엔 당신 차례군. 이젠 귀찮은 소릴랑 하지 말아 주오. 램프를 켜는 건 좋지만 제발 부탁이니 꼭 하나만 켜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누르 알 딘은 일어나 램프 하나하나에 불을 켜 나가다가 마침내는 여든 개의 램프에 모조리 불을 켜고 말았다. 여든 개의 촛불을 켜고 여든 개의 램프를 켰으니 누각은 눈부신 불빛에 춤추는 듯했다. 그 찬란한 불빛 속에서 두 사람의 젊은이들은 더없이 황홀한 표정들로 누각 안을 휘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한 노인은 그 환한 누각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둘 다 나보다는 간이 크군』 그리고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격자창을 모조리 열어 젖히고 다시 앉았다. 격자창들을 열어버리자 꽃 향기가 상쾌한 밤 공기에 실려 누각 가득히 밀려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질탕하게 술을 마셨고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그 근방 일대에 퍼져나갔다. 그런데, 모든 것을 미리 정해놓으신 신의 뜻이겠지만 교주 하룬 알 라시드가 티그리스강에 임한 왕궁의 창가에 기대어 달빛을 받으며 앉아 있다가 여든 개의 램프 불과 여든 개의 촛불이 휘황찬란하게 강물 위에 비치는 것을 보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것은 「화원의 궁」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불타는 듯이 빛나고 있는 누각을 바라보며 왕은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신을 불러오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신 쟈아파르는 왕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왕은 고래고래 호통을 치며 말했다. 『너 이놈! 너는 내 허락도 없이 바그다드를 차지했단 말이냐?』 왕의 이 뜻밖의 말에 대신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바그다드를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않았다면 그래, 내가 없는 「그림의 누각」에 불이 켜질 리가 없고 창문이 열릴 리가 없지 않은가』 대신 쟈아파르는 몸을 떨며 말했다. 『「그림의 누각」에 불이 켜지고 창이 열려 있다고 누가 그럽디까?』 『누가 그러더냐고? 이리 와서 네 눈으로 직접 보아라』 그리하여 쟈아파르는 교주 옆으로 가 저 멀리 보이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환하게 불이 켜진 다락은 밤의 어둠을 뚫고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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