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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191)

입력 1996-10-21 21:00업데이트 2009-09-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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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철없는 사랑〈30〉 모든 나무들에는 잘 익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그 종류도 가지가지였 다. 살구, 편도, 미인의 얼굴처럼 빛나는 오얏, 치아를 희게 한다는 버찌, 녹색 자 색 백색의 삼색 무화과도 있었다.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제비꽃은 어둠 속에 타오 르는 유황처럼 만발했고, 밀감들은 분홍빛 산호나 데이지인가 싶은 망울을 달고 있 었다. 갖가지 색깔의 장미, 도금양, 질리플라워, 라벤더, 새빨간 아네모네 등이 한 창 만발하여 있었다. 나뭇잎마다 구름이 흘린 방울들을 이고 있어서 흡사 보석을 박 은 것 같고, 카밀레는 새하얀 잇바디를 살짝 보이며 웃음짓고, 수선화는 장미를 바 라보는 검둥이의 노오란 눈자위 같았다. 시트론은 터질듯한 열매들을 달고 있었고, 레몬은 황금으로 만든 구슬 같았다. 대지는 온통 색색의 꽃 양탄자로 뒤덮이고, 그 일대는 봄이 찾아와서 기쁨에 넘쳐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개울은 새들의 흥겨운 노 랫소리에 가락을 맞춰 졸졸 흐르고, 산들바람은 시원한 소리를 내며 대기를 화기 넘 치게 하고 있었다. 지상에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다는 것을 누구라서 감히 상상 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은 그런 정원이었다. 이브라힘 노인은 두 사람을 데리고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두 젊은이는 그 아름다 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누르 알 딘은 취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참으로 기분좋은 집이군. 타오르는 마음의 고통도 가라앉는군』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이브라힘 노인은 그들 앞에 음식을 벌여놓았다. 두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나서 손을 씻었다. 식사가 끝나자 누르 알 딘은 격자상 가로 가서 아니스 알 쟈리스를 손짓하여 불러 다가 휘어질듯이 온갖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들을 함께 바라보았다. 이렇게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누르 알 딘은 정원지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보세요, 노인장, 뭐 마실 건 없소?』 『마실 것이라니? 술이라도 마시고 싶다는 말인가요?』 『바로 그렇소, 노인장!』 그러자 이브라힘 노인은 난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알라의 힘을 빌려 금주하고 있답니다. 술을 끊은 지가 벌써 삼년 째랍니다. 예언자 모하메드(알라시여, 그를 지켜주소서!)께서는 술을 마시는 자, 빚는 자, 파는 자, 운반하는 자를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누르 알 딘이 말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여쭤보겠는데, 만약 저기 세워져 있는 저 밉살스런 당나귀 가 저주를 받는다면, 그 저주가 노인장한테까지도 미치게 됩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 금화 한 닢과 은화 두 닢을 가지고 저 당나귀를 타고 가 십시오. 그러나 술집엔 가까이 가지 마시고 멀리 떨어져 계시다가 술을 사러가는 사 람이 있거든 이렇게 부탁하십시오. 「당신에게 이 디르함을 드릴 테니 술을 사서 당 나귀 등에다 비끄러매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돌아오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노인장은 술을 빚은 사람도, 술을 산 사람도, 운반한 사람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저주 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저주 받을 자가 있다면 술을 등에다 지고 날라온 저 당나귀인데, 당나귀가 받을 저주가 노인장한테는 미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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