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봐도 척”…보치아 출전하는 모녀-모자 콤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7일 2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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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진(왼쪽) 선수와 경기 파트너인 어머니 문우영 씨.
최예진(왼쪽) 선수와 경기 파트너인 어머니 문우영 씨.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효자 종목’ 보치아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에는 모녀(母女)·모자(母子) 콤비가 있다. 스포츠등급 BC3 최예진(30·충청남도)과 김한수(29·경기도)는 어머니와 함께 경기를 치른다. 보치아에서 뇌병변 장애가 가장 심한 BC3 등급은 선수들이 직접 공을 굴리지 못해 홈통을 사용하고, 경기 파트너가 선수를 보조한다.

다음달 2일부터 정호원(35·강원도장애인체육회), 김한수와 보치아 페어(2인조)에 출전하는 최예진의 경기 파트너는 어머니 문우영 씨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페어에서 은메달을 딴 최예진은 3회 연속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앞서 메달을 획득한 모든 경기를 어머니와 함께했고, 도쿄에서도 역시 어머니와 함께다. 24일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 때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 선수단 기수를 맡기도 했다.

태어날 때 뇌에 산소 공급이 빨리 되지 않아 뇌 손상을 입은 최예진은 2008년 고등학생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보치아를 시작했다. 체고 태권도부 출신으로 28년간 에어로빅 체육관을 운영하던 문 씨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딸과 함께 보치아에 뛰어들었다.

패럴림픽 보치아 경기가 열리는 도쿄 아리아케 체조 경기장에서 27일 만난 문 씨는 “선수가 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나도 하던 일을 놓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연습을 했다. 겨울에는 체육관 난방이 안 되어서 발에 동상이 걸리기도 하고, 불을 안 켜주면 이마에 랜턴을 달고 연습을 했다. 아빠도, 여동생도,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함께 했다”고 말했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는 엄마와 딸은 최고의 파트너가 돼 1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피나는 노력을 함께 했다는 문 씨는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없어 1부터 10까지 스스로 해야 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겠지만, 선생님 없이 같이 영상을 보며 분석을 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보치아에 전념한 최예진에게 도쿄 대회 목표를 묻자 “페어 금메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옆에서 이를 들은 문 씨는 “리우 때는 은메달이었는데, 이번에는 (정)호원이랑 (김)한수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할 것). 선수들이 정신력이 갖춰져 있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한수(오른쪽) 선수와 경기 파트너인 어머니 윤추자 씨.
김한수(오른쪽) 선수와 경기 파트너인 어머니 윤추자 씨.

리우 대회 페어 은메달리스트 김한수의 어머니 윤추자 씨 역시 경기 파트너로 나선다. 태어날 때 산소 공급 부족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갖게 된 김한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 권유로 보치아를 시작해 17년째 운동을 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보치아에 입문한 윤추자 씨는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너무 못했다. 가능성도 없다고 했고, 중간에 포기하려고 한고비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보치아에 ‘다걸기’(올인) 하면서 어느새 자신들만의 스타일도 찾게 됐다.

윤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니 더디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괜찮았던 것도 같다. 둘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보면서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편안한 모자 관계도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윤 씨는 “내가 (경기 파트너를) 함으로써 한수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지 않을까 싶다. 한수도 본인이 필요한 부분이나 요구할 것을 편하게 말할 수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아들에게 “그렇지 않니?”라고 묻자 김한수는 긍정의 미소를 지었다.

여느 어머니와 자녀들처럼 갈등을 빚을 때도 있다. 윤 씨는 “왜 없겠느냐. 몸만 불편하지, 한수도 건강한 서른 살 청년”이라며 “숙소에서 싸울 때도 있다. 나는 더 꼼꼼하게 챙기길 바라고, 한수는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하고, 훈련 방식으로도 부딪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경기를 시작하면 어머니는 아들이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눈빛과 의사소통 장치를 활용해 작전을 짠다. 이번 대회 각오를 묻자 두 사람은 “패럴림픽에 세 번째 출전하는 동안 개인전 메달이 없었다. 런던 때도, 리우 때도 4위였다. 페어에서도 메달을 따야 하지만 이번에는 개인전에서 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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