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의 극진대우, 은혜 갚는 최주환 [김배중 기자의 핫코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3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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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의 제목만 보면 현역시절 ‘꽃범호’라는 별명으로 팬들에게 사랑받던 이범호 KIA 코치(40)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시의 내용을 음미해보면 인생 팀을 만난 듯 펄펄 날고 있는 선수가 떠오른다. 최주환(33·SSG)이다.

자유계약선수(FA)로 SSG에 둥지를 튼 뒤 시즌 초반부터 맹활약 중인 최주환. 동아일보 DB
자유계약선수(FA)로 SSG에 둥지를 튼 뒤 시즌 초반부터 맹활약 중인 최주환. 동아일보 DB

2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SSG는 11-6 역전승을 거두며 NC, KT, LG와 공동 1위(9승 7패)에 올랐다. 6회까지 0-5로 끌려가던 SSG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는데, 7회 3점 홈런으로 추격의 불씨를 살린 뒤 8회 1타점 적시타, 9회 싹쓸이 2루타로 승리에 쐐기까지 박은 최주환(5타수 3안타 7타점)이 그 중심에 있었다. ‘7타점 경기’는 최주환이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던 2015년 9월 26일, 삼성을 상대로 기록한 8타점(4타수 4안타 2홈런) 이후 개인통산 두 번째로 높은 타점을 기록한 경기다.

SSG 유니폼을 입은 최주환의 맹활약은 처음이 아니다. SSG의 창단 첫 정규리그 경기이자 올 시즌 개막전(4일 롯데전)에서 결승타와 쐐기타가 된 홈런 2방으로 역사적인 첫 승을 이끌었다.

시즌의 약 10%를 넘긴 22일 현재 최주환의 타율은 0.365(7위), 23안타(공동 4위), 5홈런(공동 5위), 13타점(공동 9위), OPS(출루율+장타율) 1.045(5위)로 타격 주요지표에서 대부분 리그 열손가락 안에 들만큼 펄펄 날고 있다. 커리어 하이 시즌이던 2018년 개인성적(타율 0.333, 173안타, 26홈런, 108타점, OPS 0.964)을 넘어 여러 부문의 타이틀도 노려볼만한 페이스다.


인생활약에 대해 최주환은 “시즌 초반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복 없이 더 잘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주환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 원동력은 SSG가 그에게 보인 정성에 있다. 2020시즌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최주환은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긴 유니폼을 내밀며 ‘붙박이 2루수’를 약속한 SK(현 SSG)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4년 42억 원)했다. 타 구단이 더 많은 돈으로 최주환의 마음을 사보려 했지만 그의 오랜 바람을 이뤄주기로 약속한 현 소속팀의 정성을 못 따라왔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새 팀에 합류할 당시 최주환이 코칭스태프로부터 들은 주문도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몸을 끌어 올리자”란다. 덕분에 FA 계약, 결혼 등으로 비 시즌을 이전보다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했던 최주환도 ‘시범경기 타율 0’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정규리그 개막만을 바라보고 느긋하게 몸을 만들었다.

시즌 개막 후 타오르는 그의 방망이에 SSG는 기름을 콸콸 붓고 있다. 개막전 맹활약을 본 정용진 SSG 구단주(신세계 부회장)는 한우세트를 최주환 장모님 댁으로 깜짝 배송해 새신랑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줬다. 매 경기 팀의 최우수선수(MVP)에게 돌아가는 ‘용진이형 상’이 탄생한 배경이다. 개막전날 최주환이 홈런을 치던 순간마다 홈 플레이트 뒤 광고판에 노출됐던 제비스코(제비표 페인트)도 구단을 통해 최주환에게 임원이 직접 쓴 손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개막전 맹활약 이후 최주환이 받은 ‘용진이형 상’(왼쪽)과 광고주(제비스코) 선물. SSG 제공
개막전 맹활약 이후 최주환이 받은 ‘용진이형 상’(왼쪽)과 광고주(제비스코) 선물. SSG 제공

새 구단에서 받는 극진한 대우에 연일 감동하던 최주환도 17일 개인통산 첫 끝내기 안타를 친 이흥련(32)에게 한우세트를 선물했다. 시즌 전 동료들에게 스파이크를 돌렸던 최주환은 일명 ‘주환이형 상’으로 더그아웃을 더 훈훈하게 했다. SSG 구단 관계자는 “복덩이가 따로 없다. 최주환을 볼 때마다 돈 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개인통산 첫 끝내기 안타를 친 팀 동료 이흥련에게 일명 ‘주환이형 상’을 보낸 최주환. 이흥련 인스타그램 캡쳐
개인통산 첫 끝내기 안타를 친 팀 동료 이흥련에게 일명 ‘주환이형 상’을 보낸 최주환. 이흥련 인스타그램 캡쳐

최주환은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경기 중에 부진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바로 교체됐다. 수비도 고정 없이 여러 곳(1, 2, 3루)을 돌았다. 새 팀에 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렇게 대우까지 받는데 이 은혜를 안 갚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06년에 프로에 데뷔해 데뷔 11년 만인 2017년 두산의 주전으로 올라섰지만 최주환은 늘 불안했다. 고정된 수비 포지션이 없어 그의 가방에는 2루수용 글러브 외에 길이가 좀 더 긴 3루수용 글러브와 1루수 미트까지 있었다. 그런 최주환에게 SSG는 “최주환의 수비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며 ‘꽃’이라 불렀다. 두산에서 잡초처럼 몸부림치던 최주환도 그에게 꽃이라 부른 새 팀에서 꽃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최주환은 수비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는 “한 시즌 최다 실책이 지난시즌의 10개(2루수로 8개)였다. 하지만 올해 벌써 6개다. 한 경기에 실책을 연거푸 하기도 했다. 부끄럽다”고 했다. 최주환의 자기반성을 해석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최주환은 “요즘 이 맛에 ‘현질’한다(돈 쓴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수비에서도 본래 모습을 찾고 진짜 ‘이맛현’이란 말이 어울리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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