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시밀러 도핑, 꼼짝마라”…세계 5대 센터 KIST 도핑컨트롤센터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0일 20시 33분


권오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 센터장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센터 운영 계획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오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 센터장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센터 운영 계획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정한 경기를 위해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의 도핑 여부를 분석할 과학자들도 한껏 분주해졌다. 8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를 찾았다. 이곳에서 올림픽 선수촌이 열리는 내년 2월 1일부터 선수들의 소변, 혈액 등 4000여 개 시료에 대해 500여 종 도핑 약물의 흔적을 찾는 분석이 시작된다.

권오승 DCC 센터장은 “도핑에 의한 불공정 사례를 막기 위해 모든 분석은 24시간 이내, 최대 72시간 이내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며 긴장 섞인 각오를 내비쳤다.

손정연 DCC 선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약물을 직접 검출하면 됐지만 요즘에는 극미량을 지속 투자하거나 바이오시밀러 같은 생물학적 약제를 쓰는 식으로 도핑이 첨단화 돼 체내에서 일어나는 간접 변화를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석 대상 약물은 500여 종이지만 하나의 약물이 체내에서 평균 2~3개의 대사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동시에 수백 가지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이 필요하다. 예전보다 더 많은 약물을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DCC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인을 받은 도핑분석기관으로 30년 전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을 위해 1984년 설립됐다. 당시 육상 100m 금메달을 손에 쥐었던 벤 존슨 선수의 도핑 사실을 밝혀낸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기준으로 DCC 같은 공인기관은 세계 25개국, 28개 기관에 불과하다. 권 센터장은 “IOC 공인 도핑분석기관 보유 여부는 올림픽 개최국 선정의 필수조건”이라며 “올림픽이 없는 시기에도 국내외 스포츠 경기로부터 도핑 분석 의뢰를 받아 수행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체내에 원래 존재하는 단백질과 유사하거나 성분이 같아 검출이 어려운 ‘바이오시밀러(단백질 의약품)’ 도핑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 됐다. 권 센터장은 “체내 성분과 비슷하기 때문에 특정 약물 성분의 고유 질량(분자량)으로 도핑 여부를 가려내는 기존 질량분석법만으로는 바이오시밀러 도핑을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령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IGF)-1’ ‘성장호르몬 분비 호르몬(GHRH)’ 등은 인슐린과 매우 비슷하다. 국내에서도 성장호르몬인자, 적혈구생성인자(EPO),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등 지구력이나 근력을 강화시켜 주는 선수들에겐 금지된 바이오시밀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DCC 연구진은 최근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해 표적 약물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해당 성분을 정제해내는 새로운 분석 기술을 확보했다. 자성을 띠는 물질에 도핑약물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결합시켜 소변 시료와 섞어 준 뒤, 다시 자석을 이용해 물질을 분리해내는 방법이다. 선수의 소변에 표적 약물 단백질이 있으면 항체에 붙잡혀 나오게 되는 원리다.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시료를 농축하는 별도의 전처리 과정이 필요 없다. 이 기술로 DCC는 인슐린 및 유사 물질 검출 부문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공인시험을 통과했다. WADA의 기준을 충족시킨 공인기관은 세계적으로도 28곳 중 5곳에 불과하다. 권 센터장은 “인슐린 유사 물질 검출 기술의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센터 한 편에는 ‘방사선 주의’라는 경고문이 쓰여진 방도 있었다.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기기가 있는 이곳 역시 바이오시밀러 도핑을 잡아내는 실험실이다. 손 연구원은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스테로이드계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체내에서도 분비되는데, 여기에 포함된 탄소(C)의 방사성 동위원소 구성비율을 분석하면 내부에서 분비된 것인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있다”며 “박태환 선수도 이런 방법으로 도핑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계에는 C-12, C-13, C-14가 존재하는데, 식물에서 추출한 테스토스테론은 C-12의 비중이 인체에 비해 현저히 낮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에서 보관 중인 혈액, 소변 등 시료. 뚜껑은 특수 장비로 완전히 파쇄해야만 열 수 있도록 잠겨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에서 보관 중인 혈액, 소변 등 시료. 뚜껑은 특수 장비로 완전히 파쇄해야만 열 수 있도록 잠겨 있다.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LC-MS)’과 ‘기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 등 기존 질량분석법에 사용되는 분석 장비 역시 최근 1년 동안 최신 장비로 교체했다. ‘TSQ 알티스’로 불리는 최신 장비는 시료 스캔 속도가 초당 600개 이온을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스캔 속도가 빨라 1차 시료 분석에서 의심 도핑 약물을 가려낼 때 활용한다. 또 다른 최신 장비인 ‘Q 이그잭티브 플러스’는 스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분자의 질량을 소수 넷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어 정밀 분석이 가능하다. DCC 연구진은 이 장비에서 시료를 나노리터(nL·1 nL는 10억 분의 1L) 단위로 흘려 보내는 방식으로 분석의 정밀도를 높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개최국 주도의 도핑 스캔들 이후, 도핑과 관련한 보안 규정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WADA는 자체적으로 수사권을 지닌 조사팀과 내부 고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올림픽 기간 내 WADA 직원이 도핑 분석 실험실에 상주한다. 제대로 분석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한 ‘스파이 시료’ 5~6개도 분석 대상 시료와 섞여 있다.

손 연구원은 “분석의 정밀도에 대한 기준도 매년 50%씩 높아지고 있다”며 “지속적인 분석법 연구개발과 최신 장비 도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이유”라고 말했다. DCC에 필요한 인력 20여 명 중 정규직은 단 8명뿐이다. 권 센터장도 “선진국인 미국, 프랑스도 최근 공인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이는 기술만큼 전문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기자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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