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 나갔던’ 투지, 한국축구를 다시 깨우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1월 11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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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콜롬비아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경기에서 투 톱으로 활약한 손흥민(위쪽)과 이근호. 스포츠동아DB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콜롬비아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경기에서 투 톱으로 활약한 손흥민(위쪽)과 이근호. 스포츠동아DB
투지와 투혼, 희생으로 일군 최전방 손흥민의 2골
세트피스 실점은 다시 한 번 숙제로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다. 위기에 내몰린 한국축구에 너무 많은 과제가 주어졌다. 선수 테스트와 전술실험, 조직력 강화는 물론이고 경기내용과 결과까지 모두 잡아야 했다.

신태용(47)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남미 전통의 강호’ 콜롬비아와 충돌했다. 아르헨티나 국적으로 콜롬비아를 이끌고 있는 호세 페케르만 감독이 우리 대표팀에서 주목할 자원으로, 11월 A매치 여정에 합류하지 않은 황희찬(잘츠부르크)을 꼽을 정도로 상대는 여유를 부렸지만 우린 그렇지 않았다.

극도로 부진한 행보에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며 통산 10회, 9회 연속 월드컵 도전이라는 값진 금자탑을 세웠음에도 태극전사들을 향한 팬 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월드컵 운명이 걸려있던 8월 31일 이란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 9차전과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절박함’이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모처럼의 활발한 퍼포먼스가 수원 벌을 뒤덮었다. 2-1 승리도 몹시 반가웠다.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치러진 90분 혈투를 현장과 데스크를 연결해 분석했다.

Q=투 톱이 가동됐다.

A=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최전방에 섰다. 파트너로 베테랑 스트라이커 이근호(강원FC)가 출격했다. 울리 슈틸리케(독일) 전 감독 시절, ‘황태자’로 불렸던 이정협(부산 아이파크)과 최전방을 책임질 것으로 보였으나 대표팀 벤치는 손흥민-이근호 카드를 꺼냈다. 물론 딱히 놀랍지는 않다. 투 톱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최근 손흥민을 측면과 중앙이 아닌, 골게터로 활용하는 토트넘 경기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손흥민 활용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6일부터 풀 트레이닝을 시작한 대표팀은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찾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였다. 그간 대표팀은 단조로운 공격 패턴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실점은 많은데, 득점도 부족해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했다. 결단을 내렸다. 월드컵 본선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공격 옵션을 장착하기로 했다. 그 중 전방 지역에서 다재다능한 역량을 갖춘 손흥민에게 ‘시프트 키’를 맡긴 것은 당연했다. 결과는 알찼다. ‘손흥민 구하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주변의 희생과 모두의 합심, 투혼이 어우러지며 손흥민은 2골을 뽑아 다시 영웅이 됐다.

Q=라인업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A=전방에 2명이 나서면서 4-4-2 포메이션이 구성됐다.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중원이 특히 흥미로웠다. ‘캡틴’ 기성용(스완지시티)~고요한(FC서울)이 중앙에 배치돼 공수를 조율했다. 전담 플레이메이커는 없었지만 이근호가 폭넓은 움직임을 통해 콜롬비아 진영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상대의 허를 찔렀다. 좌우 날개로는 이재성(전북현대)~권창훈(디종)이 나섰는데, 둘 모두 윙 포워드뿐 아니라 공격 2선으로도 활약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팀은 11월 여정을 준비하며 미드필더 10명(손흥민 포함)을 뽑았고, 이 중 중앙이 보다 익숙한 자원들은 7명이었다. 신 감독은 “국가대표는 다양한 위치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변화’에 무게를 실었고, 실제로 파격적인(?) 라인업을 내놓았다. 포백수비진은 ‘전북 콤비’ 김진수~최철순이 좌우 측면, 장현수(FC도쿄)~권경원(톈진 취안젠)이 중앙을 커버했다. 둘의 신장은 각각 187, 188cm로 체격조건이 우수한 상대 공격진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Q=포지션 체인지가 인상적이었다.

A=태극전사 모두가 특정 위치에 국한되지 않았다. 멀티 플레이어를 대거 선발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쉼 없는 변화가 필요했다.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골키퍼와 수비수 4명을 제외한 나머지(6명)는 굉장히 폭넓게 뛰었다. 빠른 발로 측면을 깊숙이 쇄도한 뒤 날카로운 크로스를 적극적으로 시도해 손흥민을 향한 집중수비를 흐트러트린 이근호는 ‘언성 히어로(소리 없는 영웅)’로 평가받을 만 했다. 여기에 이재성~권창훈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고 고요한이 다시 측면으로 빠지면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기성용은 1차 저지선으로 나서다가도 빠르게 내려가 오버래핑에 나선 동료들의 빈 자리를 채웠다. 다만 후반전 2-0 리드 상황에서 세트피스로 실점한 장면은 아쉬웠다. 신 감독은 소집 후 2차례 가량 오전시간을 할애해 비공개 전술훈련을 진행하며 세트피스를 다듬었다. 그러나 득점을 하지도, 실점을 막지도 못해 다소 씁쓸함을 남겼다.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콜롬비아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경기에서 승리 후 기쁨을 나누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 스포츠동아DB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콜롬비아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경기에서 승리 후 기쁨을 나누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 스포츠동아DB

Q=사라졌던 투지가 돌아왔다.

A=상대가 볼을 잡으면 순식간에 2명 이상 그 주변으로 몰렸다. 1m 이상 간극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달려들었고, 일단 부딪혔다. 킥오프 초반부터 온몸으로 맞섰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수 위 개인기량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볼을 빼앗길지언정, 공간은 최대한 내주지 않으려 했다.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콜롬비아이지만 끈질기게 붙는 대표팀을 쉽게 뚫지 못했다. 자연스레 볼을 가로채는 횟수도 많았다. 그만큼 역습 빈도가 높았다. 최철순~권창훈~고요한~이근호 등으로 이어지는 오른쪽이 특히 활발했다. 신 감독은 “모든 면에서 콜롬비아가 우수하다. 우리는 한 발 더 뛰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 하겠다”고 했고, 제자들이 이를 지켰다. 실점할 때 실점하고, 질 때 지더라도 무기력한 경기력만큼은 반복하지 말아달라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을 흘려듣지 않은 태극전사들은 충분히 갈채를 받을 만 했다.

수원|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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