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뿌린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평창의 불꽃은 화려하게 타올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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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서 올림픽 성화 채화식… 리허설때 확보한 예비불꽃 이용
109일간의 봉송 대장정 시작

잿빛 구름 뒤로 숨었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화(聖火) 채화식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 치러진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3분만 더 기다렸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24일 낮 12시(현지 시간)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평창 올림픽 성화 채화행사가 시작할 무렵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고대로부터 올림픽 성화는 불의 여신인 헤라의 신전에 내리쬐는 빛을 오목한 거울 그릇에 모아 불꽃을 피워낸다. 이 때문에 구름이 해를 가리거나 비가 내리면 성화를 얻을 수 없다. 행사 당일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아쉽게도 자연 채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성화는 타올랐다. 전날 리허설에서 채화해놓은 ‘예비 불꽃’ 덕분이었다. 리허설 때도 해가 구름에 가려 세 번이나 채화를 시도한 끝에 불씨를 만들 수 있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나서는 곧바로 세찬 폭우가 쏟아져 관계자들을 흠뻑 적시기도 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때도 예비 불꽃을 사용했다.

이날 비로 인해 성화의 불씨가 만들어지는 장면은 없었지만 의식은 아름답고 신성했다. 오랜 신화를 간직한 돌 제단 뒤편으로 보드라운 연옥빛 드레스를 입은 여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제사장이 항아리에 담긴 불꽃을 성화대에 옮겨 붙였다.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그리스의 여배우 카테리나 레후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고,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성화가 헤라 신전 바로 앞에 있는 스타디움에 도착하자 그때서야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었다. 성화를 기다려온 한국 대표단과 관광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무릎을 꿇고 성화를 건네받은 평창 올림픽 첫 번째 성화 봉송 주자인 그리스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는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기념비까지 달렸다. 여기서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인 박지성이 성화를 건네받았다. ‘PyeongChang 2018’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 한글 자음과 모음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성화를 들고 약 200m를 달렸다. 점화 때까지 109일간의 여정을 시작한 성화는 일주일간 그리스 각지를 누빈 뒤 다음 달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다.

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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