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가 막판으로 치닫는 이맘때면 순위표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특히 강등권 탈출에 목숨을 건 하위권은 살얼음판이다.
클래식(1부) 12개팀 가운데 최하위는 자동 강등이고, 11위는 챌린지(2부) 플레이오프(PO) 승자와 승강 PO를 한다. 다시 말해 적어도 10위 안에는 들어야 내년 시즌 클래식을 보장 받는다. 올 시즌에도 그 안전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 많은 팀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현재 순위를 보면 광주가 승점 21로 꼴찌다. 인천과 상주, 대구(이상 32점) 전남(33점)이 아슬아슬하다. 마지막까지 누가 잘 버티느냐가 생사를 가른다. 이들 중 눈길이 가는 팀이 인천이다. 하위권 중 가장 끈질긴 경기를 펼친다. 최근 7경기 연속 무패(3승4무)다. 선장은 초짜 이기형(43) 감독이다. 그런데도 애송이 티가 나지 않는다. 위기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치밀함이 엿보인다. 그의 리더십이 궁금했던 이유다.
2016시즌 말 감독대행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이기는형’으로 불린 이 감독은 올 시즌 정식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 초반 무승부가 많아 ‘비기는형’으로 격하되긴 했지만, 요즘 다시 ‘이기는형’의 위상을 되찾았다.
초보 감독의 떨림은 말투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경기 전 약속하고 나간 전술이나 포메이션이 잘 안 맞을 때는 답답하고 속상하더라. 선수들이 열심히 뛰긴 하지만 내 맘 같이 움직여주지 않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감독의 애로점을 속사포처럼 털어놓았다. 지구상 어느 감독인들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감독은 가장 고독한 직업이라고들 한다. 이 감독은 이제 그 고독의 참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세월의 양념으로 그 더께가 쌓여야 비로소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이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 걷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감독이 되면서 마음먹은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권위의식을 벗고 싶었고, 기존의 틀에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선수들과 한마음이 돼 나도 운동장에서 뛴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이 감동을 받고, 열정을 느끼고,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하고 싶다.”
열린 마음이다. 눈높이를 선수들과 팬에게 맞추면서 수평적으로 팀을 이끌겠다는 소신이 뚜렷해보였다. 이런 리더십을 통해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게 경기력으로 나타나면서 인천의 버티는 힘이 강해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유명했다. 오른쪽 윙백 또는 윙으로 활약한 그는 낮고 빠른 슈팅이 강점이었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출발해 성남~서울~오클랜드FC(뉴질랜드)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K리그 254경기를 뛴 수준급 선수였다. 2011년 서울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고, 2015년 인천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인천에 둥지를 튼 지 불과 3년이지만, 그는 확실한 인천맨이 되어 있었다. 인천의 색깔을 찾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인천의 색깔은 무엇일까. 이 감독은 “패배의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 붙는 끈질긴 팀”이라고 설명했다.
“인천만의 색깔을 찾는 게 내 임무다. 올 시즌 초반에는 협력수비 등 함께 하는 축구가 잘 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인천만의 끈끈한 축구를 찾아가는 중이다. 쓰러지기 일보직전까지 뛰는 끈질긴 팀이 바로 인천의 색깔이다.”
이 감독은 초보답지 않게 수 싸움에 능하다. 9월 17일 서울전이 대표적이다. 후반 중반 송시우를 교체 투입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동점골을 터뜨린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 감독은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월등한 선수가 없다고 보면 맞다. 그래서 상대팀 경기 분석을 많이 한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교체 타이밍을 연구하는데, 그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그의 목표는 클래식 잔류다. 자신감도 있다. 남은 7경기에서 최근의 경기력을 유지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인천의 전통 때문에 어깨는 무겁다. 인천은 도시민구단 중 유일하게 단 한번도 2부로 떨어지지 않은 ‘K리그 잔류왕’이다. 이 감독은 “시즌 막판이 되면 선수들은 긴장감이나 압박감으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인천 선수들은 오히려 집중력을 가진다”며 ‘잔류 DNA’를 가진 인천 선수들을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