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기록 세리머니, 한국야구에도 진정한 ‘축하’가 필요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2일 05시 30분


텍사스 아드리안 벨트레가 7월 31일(한국시간) 볼티모어전에서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하자 딸 카산드라(오른쪽부터)와 아들 아드리안 주니어 그리고 막내딸 카닐라 등 아이들이 아빠를 축하하기 위해 필드로 뛰어나오고 있다. 때마침 펜스에는 미리 준비한 대기록 축하 메시지가 등장했다. 이닝 종료 후나 클리닝 타임을 이용해 기록달성을 축하하는 한국 프로야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텍사스 아드리안 벨트레가 7월 31일(한국시간) 볼티모어전에서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하자 딸 카산드라(오른쪽부터)와 아들 아드리안 주니어 그리고 막내딸 카닐라 등 아이들이 아빠를 축하하기 위해 필드로 뛰어나오고 있다. 때마침 펜스에는 미리 준비한 대기록 축하 메시지가 등장했다. 이닝 종료 후나 클리닝 타임을 이용해 기록달성을 축하하는 한국 프로야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7월 31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텍사스와 볼티모어의 맞대결. 4회말 한 베테랑 타자가 타석에 등장하자 장내 모든 관중이 기립했다. 대다수의 관중은 이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일부 열성적인 팬들은 미리 준비해둔 플래카드를 높이 들어 올렸다.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에 30번 밖에 없었던 대기록, 개인통산 3000안타에 도전하는 아드리안 벨트레(38·텍사스)에게 보내는 팬들의 응원이었다.

텍사스는 바로 직전 이닝인 4회초에 4실점하며 0-4로 크게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팬들의 관심은 이미 경기 승패가 아닌 벨트레에게 몰려 있었다. 대기록을 맞이할 생각에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은 현실로 다가왔다. 벨트레는 깔끔한 2루타로 마침내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프로생활 20년 만에 이룬 쾌거. 현역 메이저리거 중에서 3000안타를 달성한 선수는 스즈키 이치로(44·마이애미)와 벨트레 뿐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 속 31번째 3000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팬들은 환호했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도 소리를 질렀다. 이 순간만큼은 적과 아군이 없었다. 볼티모어 3루수 매니 마차도는 이미 글러브를 벗고 벨트레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구단이 미리 준비했던 전광판 세리머니와 현수막, 담장 제막식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대기록의 현장감이 그대로 기념식에 전달되는 최고의 세리머니였다. 주인공 벨트레는 필드 안에서 가족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환희의 순간을 즐겼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새삼 대기록 세리머니에 소극적인 한국 프로야구와 비교되는 광경이었다. KBO는 1982년 출범 이후 올해로 36년째를 맞았다. 수천 명이 넘는 선수와 그에 따른 수많은 기록들이 야구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또 감동하게 만들었다. 다만 이런 대기록을 맞이하는 해당 구성원들의 자세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기념식은 기록을 달성한 경기가 끝나고, 추후 일정을 잡아 열린다. 혹은 해당 경기의 클리닝타임을 활용해 급하게 진행된다. 삼성 이승엽은 지난해 개인으로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인 한·일 통산 600홈런을 때렸지만, 경기 진행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세리머리를 클리닝타임에 끝냈다. 현장감은 기념식에 크게 반영되지 못했다.

한·일 통산 600홈런을 기록할 당시 이승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한·일 통산 600홈런을 기록할 당시 이승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BO 구단과 선수들은 어떤 대기록을 달성해도 상대 팀에 대한 예의, 원활한 경기진행을 이유로 즉각적인 세리머니를 마다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겸손의 미덕이다. 개인이 선수로서 달성할 수 있는 대기록은 선수 개인만의 자산이 아니다. 크게 바라보면 한국야구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야구계의 큰 자산이자 후배들의 새로운 목표가 될 수 있는 기준선이다.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에 당당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맞이하는 관계자들도 진정한 ‘축하의 장’을 만들 의무가 있다. 기본적인 여건만 갖춰진다면 절대 메이저리그에 뒤지지 않을 멋진 ‘그림’이 한국야구에서도 나올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누구보다 열성적인 야구팬들이 진정한 축하를 보낼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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