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정-최항 형제의 ‘운수좋은 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26일 05시 30분


SK 최항(왼쪽)은 25일 인천 kt전에서 데뷔 첫 1군 무대를 밟았다. 이날 형 최정은 3번 3루수로, 최항은 8번 1루수로 선발출장해 화제가 됐다. 경기에 앞서 형 최정과 함께 포즈를 취한 최항.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SK 최항(왼쪽)은 25일 인천 kt전에서 데뷔 첫 1군 무대를 밟았다. 이날 형 최정은 3번 3루수로, 최항은 8번 1루수로 선발출장해 화제가 됐다. 경기에 앞서 형 최정과 함께 포즈를 취한 최항.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은 알고 보면 반어법적인 제목이다. SK 최정(30), 최항(23) 형제는 2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 kt전은 새드앤딩이었던 소설과 결말이 다른 진짜 ‘운수좋은 날’을 써내려갔다.

SK는 이날 최항을 1군으로 전격 승격시켰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바로 최항을 8번 1루수로 출전시켰다. 최항은 올 시즌 퓨처스(2군)리그 61경기에서 타율 0.338 6홈런 42타점의 출중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2012년 SK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프로선수가 된 최항은 지난해 군복무를 마치고, 올 시즌 육성선수 신분으로 출발했다가 데뷔 첫 1군의 감격을 누렸다.

kt전에 앞서 만난 최항은 긴장과 설렘이 겹치는 표정으로 “형도 지금 이 상황을 재밌어 한다. 형은 내 롤 모델이다. 노력해도 따라가기 버거운 존재인데 (형과 1군 무대에서 같이 뛰는) 꿈이 이뤄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형제가 같은 팀에서 선발출장한 것은 1993년 9월22일 빙그레 지화동-지화선 이후 처음이다. 지화동-지화선 형제는 53경기 선발출장을 함께 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최항의 데뷔전은 지옥에서 출발해서 천당까지 올라갔다. 1회초 수비에서 kt 1번타자 이대형의 타구가 3루 땅볼이었다. 3루수 최정의 송구가 1루수 최항을 향했고, 깔끔하게 잡았다. 그러나 2번타자 정현의 평범한 뜬공에 최항은 포구 위치를 혼동해 잡지 못했다. 이 실책이 빌미가 돼 SK 선발 김태훈은 1회에만 3실점했다.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열렸다. 1회초 1사에서 kt 정현의 플라이 타구를 SK 최항이 빠뜨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열렸다. 1회초 1사에서 kt 정현의 플라이 타구를 SK 최항이 빠뜨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SK가 반격을 개시한 2회말부터 최항에게 만회 기회가 찾아왔다. 1-4로 밀리던 2사 2루에서 kt 선발 로치의 초구를 휘둘러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뽑아냈다.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와 타점을 동시에 올렸다.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최정이 덕아웃에서 활짝 웃은 순간이었다. 이어 최항은 김성현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첫 득점까지 거뒀다. 최정은 4회말 4-4 동점을 만드는 시즌 26호 홈런을 터뜨렸다.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열렸다. 3회말 1사에서 SK 최정이 kt 선발 로치를 상대로 좌월 동점 솔로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열렸다. 3회말 1사에서 SK 최정이 kt 선발 로치를 상대로 좌월 동점 솔로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엎치락뒤치락 흐름은 6-6이던 9회말 SK 공격에서 갈렸다. SK 선두타자 김성현이 kt 심재민의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SK가 통신라이벌 kt전 3연패 후 6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SK는 kt 3연전 스윕을 포함해 4연승으로 단독 3위(40승32패1무)를 지켰다. 꼴찌 kt는 6월 4승17패의 참담한 성적을 면치 못했다.

김성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는 순간, 덕아웃에서 최정-최항 형제는 마치 기우제 끝에 비를 보는 인디언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다. 두 형제에게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쌓인 날이 될 듯하다.

인천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