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김사니,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8일 05시 30분


한국여자배구 최고세터로 꼽히던 김사니는 은퇴를 선언한 뒤 “20년간 고생했으니까 스스로의 인생에 휴가를 주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진제공|IBK기업은행
한국여자배구 최고세터로 꼽히던 김사니는 은퇴를 선언한 뒤 “20년간 고생했으니까 스스로의 인생에 휴가를 주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진제공|IBK기업은행
한국 여자배구 현역 최고세터로 꼽히는 IBK기업은행 김사니(36)는 “이토록 훈훈한 은퇴”라고 말했다. 스포츠동아 단독보도(5월5일)로 아름다운 끝내기가 알려진 다음날인 6일, 김사니는 산(山)을 정복하고 영예롭게 내려온 자의 진심을 드러냈다. 가슴 속에서 묻어나는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은퇴 소감은?

“은퇴라는 것은 언제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라는데 나는 굉장히 마음이 편하다. 하고 싶은 배구 실컷 했고, 마지막 경기까지 뛸 수 있었고, 우승까지 했다. 은퇴했어도 우울하지 않고 기분 좋다.”

-은퇴 결심에 이른 계기는?

“잔부상이 많았고 허리도 아팠다. (그만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몸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결심하니 누구 얼굴이 떠올랐나?

“고마운 사람들. 아무래도 엄마가 제일 고맙다. 또 돌아가신 저희 아빠. 아빠 덕분에 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팀인 IBK기업은행 선수들한테 굉장히 고맙다.”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

“‘잘 생각했다’고.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맡겨주는 분이시다. ‘네가 선배들에 비해 오래 했다. 욕심 내려놨으면 좋겠다’고 조언하셨다.”

김사니. 사진제공|IBK기업은행
김사니.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막상 은퇴하니 시원섭섭한가?

“(5월3일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과 면담에서 은퇴 의사를 전달하기 전까지) 여행을 떠났다. ‘지금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하니 시원했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 일단은 20년 고생했으니까 스스로의 인생에 휴가를 주고 싶다.”

-이 감독은 코치 자리까지 만들어주려 했다.

“저희 감독님 성격 알지 않나?(웃음) 저한테는 진짜 잘해주셨다. 항상 배려해주셨다. 마지막까지 ‘네가 그냥 나가면 안 된다. 팀에 많은 기여했으니 자리를 마련해볼 테니 생각해봐라’고 하셨다. 감사했다. 그러나 ‘내가 아직 공부가 덜 된 것 같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이 감독에게 유일하게 혼나지 않는 선수라고 들었다.

“감독님이 뭘 원하는지 알았던 것 같다. 토스뿐 아니라 솔선수범하려는 자세가 감독님 눈에 들지 않았을까? 감독님이 믿어주시니까 기대에 부응하고 예쁨 받고 싶었다.(웃음)”

-IBK기업은행이 이제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배구에 대한 열정이 강한 팀이다. (내가 없어도) IBK기업은행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팀이다. 김희진, 박정아 등이 FA인데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을 선택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배세터 이고은의 책임이 막중해졌다.

“고은이 스타일이 있기에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고은이가 나한테 많이 물어봐줬다. (은퇴소식 들은 뒤) ‘언니, 저 울면서 전화할 수도 있을 거예요’라고 하던데, 잘할 것 같다.(웃음)”

IBK기업은행 이고은. 스포츠동아DB
IBK기업은행 이고은. 스포츠동아DB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나?

“칭찬은 현역 때 항상 스스로에게 했다. 지금은 ‘사니야,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과는 좋았지만 과정에서는 힘든 시기가 많았다. 다시 시작하고, 혼자 이겨냈다.”

-힘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힘은?

“배구할 때까지는 1등이고 싶었다. 지지 않으려고, 편하게 할 수 있었는데 내 자신을 힘들게 다그쳤다. 그것이 나중에는 빛을 발한 것 같다.”

-이제 배구를 좀 알 것 같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미있었다. IBK기업은행에 있으며 좋은 공격수들 덕분에 하고 싶은 배구를 할 수 있었다. 너무 행운이었다. 모든 시간이 좋았다.”

-세터는 토스 이상의 믿음을 공격수한테 줘야 한다. 그런 믿음을 얻는 비결은?

“마음이지 않을까. 세터가 먼저 공격수한테 다가가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것. 처음에는 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서로에 대한 끈끈함, 믿음을 알아갔다. 그런 믿음이 경기력으로 나왔던 것 같다. 패턴에 대해서도 ‘이거 해볼까’ 많이 주문했는데 고맙게도 잘 따라와 줬다.”

-돌이켜보면 어떤 장면들이 기억에 남나?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한일전 이겼을 때. 그리고 IBK기업은행 이적 첫해(2014~2015시즌)에 우승했을 때. 사실 경기 이후의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데 그 두 기억 때는 참 많이 울었다.”

런던올림픽 대표 당시 김사니.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런던올림픽 대표 당시 김사니.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정말 아쉬움 없나?

“IBK기업은행 이 감독님 밑에서 운동 원 없이 했다.(웃음) 구단에도 감사하다. 너무 훈훈하게 은퇴하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은퇴식도 상의중이다. 은행장님(배구단 단장을 역임한 김도진 은행장)부터 너무 잘 챙겨주셨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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