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은 지금 기로에 서있습니다. 1년 뒤면 이곳에서 겨울올림픽이 개최(2018년2월9일)됩니다. 원래대로라면 설렘과 기대로 들떠있을 때이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김 빠진 축제가 되진 않을까" "제대로 운영이 될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평창의 겨울동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선수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첫번째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
한국 스키점프의 산증인 최흥철 김현기 최서우(왼쪽부터). 동아일보 DB
○ 스키점프 삼총사, "다시 한번 날자"
스키점프 국가대표 삼총사 최흥철(36) 최서우(개명 전 최용직·35) 김현기(34·이상 하이원)는 오늘도 배고프다. 멀리 날려면 가벼운 몸을 유지해야해 식사량을 조절한다. 고된 훈련에도 저녁을 수시로 거른다. 마음껏 먹어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최서우는 키 162cm에 몸무게 54kg, 김현기는 176cm에 63kg, 최흥철은 175cm에 62.5kg이다.
한국 스키점프의 산증인이 삼총사이고, 또 이들의 인생이 곧 스키점프이다. 2009년 영화 '국가대표'의 흥행으로 관심이 집중됐지만 빛나던 시기는 짧았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주말이면 사과박스를 만들었다. 인형 탈을 쓰고 홍보 도우미도 해봤다. 유니폼이 몇 벌 없어 찢어진 옷을 입고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 그래도 버텨냈다.
'짧은 영광'도 있었다. 2003년 이탈리아 타르비시오에서 열린 겨울 유니버시아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에도 스키점프 선수가 있음을 당당히 알렸다. 일본 아오모리 겨울아시아경기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쓴 현실에서 맛 본 달콤한 순간들이다.
삼총사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영화 개봉 때처럼 다시 한 번 스키점프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김현기는 "선수 생활하는 동안 자국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그동안 힘든 선수 생활을 참고 해온 것도 국내 스키점프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하늘을 날아갈 때의 속도는 시속 100~120km. 최흥철은 "하늘을 날 때 경기장 주위의 화려한 풍경과 환호하는 팬들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보는 건 오직 착지점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속에 어느덧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 접어든 그들이 한국 스키점프를 위해 무엇을 남길지,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겼다고 했다.
박제언(사진 위)과 아버지 박기호 노르딕 복합 대표팀 감독. 동아일보 DB ○ 노르딕 복합, 父子의 도전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노르딕 복합 국가대표 박제언(24· 국군체육부대)이 자주 듣던 소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박기호 노르딕 복합 대표님 감독(54)이다. 박제언이 스키를 처음 시작 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크로스컨트리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 평창군에서 자라며 국가대표 선수들을 삼촌 삼아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스키에 눈을 떴다.
어릴 때부터 박제언은 겨울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6년 출전한 전국겨울체육대회에선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4관왕을 차지한 한 살 터울 동생 박제윤과 함께 그해 전국겨울체육회 공동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당시 박제언은 “2014년 겨울올림픽이 평창에서 유치되면 동생과 사이좋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고향 평창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은 생각 보다 4년 늦어졌지만 그 무대를 향한 꿈만은 그대로였다. 2일 평창에서 만난 박제언은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했다. 고향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메달권에 진입하고 싶다”며 11년 전과 같은 꿈을 말했다.
스키점프를 하던 박제언은 2013년 대한스키협회가 평창 올림픽을 겨냥해 노르딕 복합 대표팀을 꾸릴 당시 박제언은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종목을 바꿨다.
부자(父子)는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평창에서 훈련(감독)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하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박제언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웃음)"라고 오히려 위안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배들이 없다 보니 조언 구할 데가 없어 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평창의 겨울동화를 꿈꾼다.
※ 노르딕 복합(Nordic Combined) 크로스컨트리와 스키점프를 함께 치르는 경기. 1924년 제1회 프랑스 샤모니 겨울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남자 경기만 치른다. 개인 노멀힐, 개인 라지힐, 단체전 등 세부 종목에서 3개의 금메달을 가린다. 스키점프 점수에 따라 크로스 컨트리(개인 10km, 단체전은 4명이 5km씩) 출발 시간 차이를 둔다. 개인전은 1점당 4초, 단체전은 1점당 1.33초씩 늦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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